‘국민적 동의’ 여건 성숙에서 갑자기 돌변... ‘굴욕적 외교관계’도 손 떼게 해야
한일정보보협정 관련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현안보고하는 한민구 국방장관ⓒ뉴시스
"국민적 동의라든지, 저건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있어야 될 거라고 봅니다"
지난달 14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감사에서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관해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에 체결하느냐"의 질문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답변이다. 한 장관은 이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관해 군사적 필요성이 있고 북핵 미사일 상황 등으로 체결 필요성이 커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동의' 즉 여론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지금은 그렇게 강력하게 정부가 나서서 추진할 여건이 성숙한 시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 장관은 지난달 5일, 국회에 출석해서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논의에 관해 "한일 군사정보와 관련해서는 군사적 필요성이 존재하지만,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군사적 정보공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충분한 이해와 공감이 이뤄지면 여건 성숙의 좋은 기반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여건 성숙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지난달 27일, 갑자기 보도자료를 통해 "2012년 중단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한 논의를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방부 말처럼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밀실 협상' 논란이 일면서 강한 국민적 반대 여론으로 무산됐던 것을 갑자기 재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재추진 이유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날로 증대되고 있고 우리의 안보 상황은 더욱 엄중해지고 있다"고 내세웠다.
'국민적 동의'와 '여건의 성숙'을 강조하던 국방부가 불과 보름도 안 돼 북한의 위협과 안보 상황의 엄중함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 등 안보 상황은 늘 존재했다. 오히려 북한은 이 기간 두 번이나 미사일 발사 실험에 실패해 체면을 구긴 직후이다. 더구나 국방부는 논의 재개 발표 이틀 전인 지난달 25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2일에는 국방부 실무자가 도쿄로 날아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관해 실무협의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갑자기 초스피드로 모든 일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28일, "12월에 한중일 정상회의가 예정되어 있다"며 "한국은 11월 중에라도 체결할 생각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일본이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사항을 해결해 '선물 보따리'를 들고 방일하겠다는 것이다.
아사히 신문은 더 나아가 "한국 측은 2012년 무산됐던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도 서두르고 싶은 생각"이라고 전했다. 정보 교류는 물론이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수물자까지 상호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국방부는 이러한 아사히 신문 보도에 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공식 질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국방부는 논의 재개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일(본)측과 협의를 진행하면서 추진과정을 가능한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기자의 질문에 답변조차 거부한 것이다.
ASEAN+3 정상회담 참석차 라오스를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일 오후(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2016.09.06ⓒ뉴시스
한국 국방부 질의에도 '묵묵부답'... "미국 시키는 대로 한다"
대체 이 기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국 국방부의 입장이 이렇게 돌변한 것일까? 임기가 끝나가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강력하게 압력(push)을 행사했다는 것이 외교가의 전언이다. 한미는 지난달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8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서도 이 부분을 분명히 했다. 한미는 "한미일 3국 간 안보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를 공유했다"며 "3국이 6월에 실시한 미사일 경보훈련(PACIFIC DRAGON)이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정보공유 능력 향상에 기여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발표했다.
발표만 매끄럽게 한 것이지, 쉽게 말해 한일 간 군사협력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한국 국방부의 갑작스러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재추진에 관한 기자의 질의에 미 국방부 대변인은 "중요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두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분명한 '환영' 입장을 밝힌 이 논평에 기자가 다시 '환영'인지 '권고(했는지)'인지를 물었지만,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에 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이에 관해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이 정권은 미국에만 갔다 오면 다 시키는 대로 한다"면서 "국내 정치에 약하니까, 말을 더 잘 듣는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 의원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재추진 결정은 한반도 안보 불안을 고조시키며 국회를 철저히 무시한 졸속 결정"이라며 "국회 동의를 받지 않겠다는 국방부의 오만불손과 독선적 행태가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는 한국과 일본을 사실상 군사동맹국화하는 조치로 국제질서의 근본을 뒤흔드는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다"며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적 상황은 국방부도 강조한 것처럼, 국민적 여론의 성숙은 고사하고 전대미문의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발생해 국민들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등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전무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도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해 국방부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지시했다는 전언이다. 아무리 국내 정치 실패를 안보 문제로 돌리려고 하는 의도일지라도 이는 철저히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급하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서두르는 것은 외교관계에 있어서도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미국이 시키는 대로 체결을 강행하고 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일본 아베 총리를 만나러 가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지금 국민이 나서서 막아야 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내치가 아니라, 당장 굴욕적 외교관계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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