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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우리는 모두 그에게 빚을 졌다"

류. 2018. 7. 25. 16:39

법으로 약자 품었던 노회찬, 그가 우리에게 남긴 '40건'의 과제

▲ [2013오마이포토] '눈물바다'를 '웃음바다'로 바꾼 노회찬 전 의원 재보선 투표일인 4월 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마들역 부근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노원병) 선거사무실에서 노회찬 전 의원이 부인인 김지선 후보의 낙선을 위로하기 위해 포옹하던 중 춤을 추는 포즈로 익살을 부리고 있다.

"대학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 2010년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 공약집 <노회찬의 약속> 중 -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꿈꾼 나라의 단면이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꿈을 '법안'으로 실현시키는 사람이다. 그가 펼치고자 했던 꿈 역시 대한민국 국회에 유의미한 족적으로 남았다.

7년 의정 생활동안 노 의원은 1029건 의안(법률안 945건) 발의에 참여했고 그중 39건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 의원 명의의 대표발의 의안은 127건(법률안 119건)에 달하고 그 가운데 7건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는 약자와 소수자를 법으로 품었다. 호주제 폐지에 앞장섰고, 장애인 차별금지를 위해 애썼으며, 파산선고를 받은 이들의 부당 해고를 막았다.

그런 그의 법에는 체온이 스몄다. 2017년 1월,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표류할 조짐이 보였다. 노 의원이 나섰다.

"피해자들이 절박한 처지를 감안하면 마냥 늘여서 심사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법도 인간의 체온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법을 왜 만듭니까?"

36.5도, 따스함이 담긴 그의 족적을 좇았다.

그의 첫 번째 '대표발의', 그가 첫 번째 통과시킨 법

2004년, 노 의원이 국회에 입성해 처음으로 대표 발의한 법은 '민법중개정법률안'이다.

호주제가 남녀차별을 조장하며 호주와 다른 가족구성원간의 관계를 종적인 관계로 규정해 가부장적 사고를 고착화 시키므로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더불어 자녀가 아버지의 성과 본만 따르도록 한 것을 어머니 성도 따를 수 있게 바꾸자고 제안했다.

노 의원은 같은 해 12월 법사위에서 "부성 강제 조항은 가부장적인 가족문화를 유지 온존하고 남아 선호 사상을 부추기는 호주제의 대표적인 여성 차별 조항"이라며 "자녀의 성 결정을 국가가 일률적인 규정을 강제하는 것은 부모의 친권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며 가족 문제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고유의 전통인 호주제를 유엔 문화유산으로 등록해야 한다'거나 '여성단체들에 밀려 호주제 폐지를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문화유산) 등록은 등록대로 하시라"고, "호주에도 없는 호주제는 없애자"고 맞받아치며 기지를 발휘했다.

▲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 조문객이 구두 한 켤레를 올렸다.

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이 처음으로 국회를 통과한 것은 2006년 3월이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그것이다. 파산선고 등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해고 등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2005년 11월 법사위에서 노 의원은 "아직도 많은 파산자가 사회적 냉대와 차별 속에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며 "위 법률들이 개정되어 파산자들이 사회적 낙오자가 아니라 건강한 시민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의 마지막 '대표 발의', 그리고 남은 40개의 과제

노 의원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의한 법이 된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특활비 폐지를 골자로 한다.

지난 5일 발의된 개정안은 국회의장이 예산을 편성할 때 특수활동비 예산을 편성할 수 없도록 하고 국회 의장 소속 '국회 예산자문위원회'를 구성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의당 의원들은 이 법안의 공동발의자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고 한다. 결국 정의당 의원 외 6명만이 법안에 이름 올렸다.

노 의원은 세 달치 특활비를 "양심상 도저히 못받겠다"며 자진반납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6월 7일, '정의와 평화의 의원 모임' 교섭단체 원내대표로서 받은 특활비 전액을 반납하며 "최근 대법원은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는데 이는 국회에 특활비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며 "동일한 이유에서 정의당은 특활비 폐지를 당론으로 주장해왔다"라고 말했다.

노 의원이 사망한 후, 이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노회찬 의원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발의한) 법안 국회특활비 폐지 서명운동에 동참해달라"며 "고인의 죽음에 슬퍼하고만 있을 때는 아니다, 그것만이 투명한 정치·깨끗한 정치를 위해 살아생전에 그토록 노력했던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24일 올라온 청원에는 25일 오후 3시 현재 1만 460명이 서명했다.

특활비 폐지 법을 포함해, 노 의원이 대표 발의했으나 계류중인 법안 40건이 20대 국회에 남아있다. 대부분 힘 있는 자의 부당한 권력을 통제하고, 힘 없는 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들이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 등에 개입할 수 없게 하고 국정원의 예산 감시를 강화하는 내용의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 불특정다수의 시민이 이용하는 시설에 대한 안전관리 의무를 위반한 경우 해당 기업 사주에 형사책임을 묻는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 아동학대범죄사건의 경우 국선변호인 선임을 의무화하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전사·순직한 전몰·순직군경 등의 가족관계등록부 사망사유를 전사·순직로 적어 국가유공자로 예우하자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이 그것이다.

'시민' 김현성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어느 빚쟁이가 보내는 송사' 글을 통해 이 같이 말했다.

"나는 평생 노회찬 의원에게 땡전 한 푼 후원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찬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 120개의 상당수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는 이 분에게 조금씩 빚을 진 셈이다.

빚을 지운 분은 이제 떠났고, 이제는 살아 있는 자들이 빚을 갚을 차례이다. 차별이 없고 노동자들이 더 윤택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뜻은 이제 충분히 알았다. 이 정도 빚이야 거뜬히 시민들이 힘을 모아 갚아 나가야 할 일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 세상에 남은 빚, 우리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

우리에겐 노 의원이 남긴 40개의 과제가 남았다.


출처

http://v.media.daum.net/v/2018072515360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