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 효과' 엉터리 상술로 포장
물에 녹은 산소 의학효능 입증안돼
마시는 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도무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요즘은 노화를 막아주고, 암을 치료해준다는 '수소수'가 과학상식이 부족한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정체불명인 알칼리환원수의 효능을 강조하다가 이제는 수소수로 전향을 해버린 전문가도 있고, 엉터리 수소수를 만병통치약으로 홍보해주는 무책임한 언론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의 소중한 건강을 엉터리 상술에 맡겨버릴 수는 없다.
화학물질의 생리 효과는 양(量)에 비례한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너무 적게 먹으면 아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물론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가 된다. 인체에 해로운 유해물질의 독성도 마찬가지다. 화학물질은 우리 몸에서 화학반응을 통해 다른 물질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약효나 독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수소수에 들어있는 수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분자인 수소는 물에 잘 녹지 않는다. 우리가 마시는 물 1리터에 들어있는 수소의 양은 나노그램(10억분의 1그램)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기압에서 수소를 억지로 포화시켜도 1리터의 물에 1.6밀리그램(1.6ppm)이상을 녹일 수가 없다. 아무도 어길 수 없는 엄격한 자연법칙이다. 정밀 분석기기로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양의 수소에서 기적의 효능을 바랄 수는 없다.
독일 노르데나우의 폐광에서 솟아나는 샘물, 일본 큐슈에 있는 히타 온천수, 멕시코의 트라코테 샘물, 프랑스의 루르드 샘물에 수소가 많이 녹아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하의 토양에 포함된 베릴륨·마그네슘·칼슘 등의 알칼리토금속이 물과 반응해서 만들어지거나, 박테리아나 조류(藻類)가 만들어낸 수소 때문이다. 그렇다고 화학 법칙에 어긋날 정도로 많은 양의 수소가 녹아 있을 수는 없다. 기적의 효능은 관광객을 노린 상술일 뿐이다.
시중에서 비싼 값에 유통되는 수소수는 산업적으로 생산한 고압의 수소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분해 등의 화학적 방법으로 발생시킨 수소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수소수의 생산방법에 상관없이 뚜껑을 열어두거나 온도가 올라가면 녹아있던 수소는 곧바로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수소수를 통해서 효능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수소를 흡입하기는 어렵다.
수소의 의학적 효능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약한 환원력을 가진 수소를 질병 치료에 이용해보겠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체 효능이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다. 수소수 광고에 자주 소개되는 일본의과대학의 오타 시게오 교수의 2007년 네이처 메디신 논문도 그런 수준이다. 기체 상태로 주입한 수소가 뇌세포에서 생성되는 활성산소 중 일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실험에 사용한 수소는 물에 녹아있는 수소가 아니었다. 수소의 생리적 부작용에 대한 확인도 필요하다. 그런 정도의 실험으로 수소수의 효능을 입증했다는 주장은 지나친 억지다.
만병통치의 효과를 자랑하던 '기능수'는 수소수만이 아니다. 1980년대의 '육각수'에 이어서 등장한 이온수·파동수·알칼리환원수·해양심층수·게르마늄수 등이 모두 암·치매·당뇨 등의 고질적인 만성질환에도 놀라운 효능이 있다고 야단이었다. 물론 실제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엉터리 기능수에 대한 소비자들의 열기도 시들해졌다. 요즘 언론과 인터넷에 요란하게 소개되고 있는 수소수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수소수를 통해서 인체에 흡수될 수 있는 수소의 양이 효능을 기대할 정도로 많을 수가 없고, 수소의 생리효능도 의학적으로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판적 합리주의를 강조했던 영국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에 따르면 만병통치약은 실제로 아무 병도 고쳐주지 못한 약이다. 물이 우리의 건강 유지에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물이 질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건강은 기적이 아니라 건강한 상식으로 지켜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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