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과학의 상품화 논란
대진침대가 만들어 판매한 침대 일부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면서 사회적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명 '방사능 침대'다. 업체 측은 몸에 좋다는 '음이온'을 발생시키기 위해 방사선을 내뿜는 천연 방사성 핵종(동위원소)인 '모나자이트'를 침대에 넣었다고 해명했다.
과학기술계를 비롯해 의료계에서는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주장은 유사과학, 즉 사이비과학이라고 꾸준히 지적해 왔다. 하지만 일부 업체들의 과대광고가 여전히 인터넷상에서 '사실'처럼 둔갑해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유사과학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대처를 주문하고 있다.
음이온은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나 분자가 음의 전기를 띠고 있는 전자를 하나 더 갖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나 분자가 특정한 상태에서 음이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이온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전기를 흘려 공기 중에 있는 산소를 분해해 음이온을 만드는 방식이다. 음이온이 나온다는 공기청정기는 대부분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물이 고체에 부딪히는 과정에서 음이온이 발생하기도 한다. 폭포수 인근 공기에서 음이온이 많이 발견되는 이유다. 방사선을 내뿜는 광물을 이용해 음이온을 만들기도 한다. 대진침대가 침대 제작에 사용한 방식이다. 광물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공기 중에 있는 물 분자를 쪼개고, 이때 음이온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처럼 자연적으로, 혹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음이온은 1990년대 말 일본에서 갑자기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여러 제품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과학자들이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밝혔지만 도시바를 비롯해 히타치와 같은 일본 대기업까지 나서서 음이온 선풍기, 음이온 제습기 등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음이온 가전제품 인기는 상당했다. 2000년대 초반 음이온 제품은 동해를 건너 한국에 상륙했다.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폭포나 숲속, 나무로 만든 집 등 자연 친화적인 곳의 공기에서 음이온 개수가 더 많이 발견된다는 연구들이다.
연구에 따르면 숲속이나 폭포에서는 1㎤ 공간 안에 수천~수만 개의 음이온이 존재한다. 도심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수치다. 이를 근거로 일부 업체들은 사람들이 숲속에 들어가면 시원한 기분을 느끼는 게 음이온이 많은 공기를 마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음이온은 자연의 비타민'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 역시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1㎤ 공간에 들어 있는 공기 분자는 무려 3000경개에 달한다. 수천~수만 개의 음이온이 많아 보이지만 이 같은 공기 분자 숫자와 비교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독극물인 VX도 극미량일 경우에는 전혀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처럼 공기 중에 떠다니는 수천 개의 음이온 또한 눈에 띌 만한 효과를 내기 힘들다는 게 과학계 분석이다.
음이온이 알레르기를 치료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해 준다는 주장 또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과학컨설팅기업 익스포넨트는 1957~2012년 대기 중 음이온이 사람의 기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논문 33편을 메타연구한 결과를 2013년 국제학술지 'BMC정신의학'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대기중 음이온 농도나 개수가 수면이나 휴식, 스트레스 완화 등에 미치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음이온이 노화를 방지하고 긴장감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려면 체내로 들어가야 하는데 음이온이 피부를 뚫고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주장도 허구에 가깝다. 또 공기 중에 존재하는 음이온은 불안정한 만큼 곧바로 전기적 성격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음이온이 건강에 좋은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기준치 이상 오존에 노출되면 호흡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름철 대기 중 오존 농도가 높아질 때 '오존 주의보'를 발령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음이온이 미세먼지 제거에 효과적일 수는 있다. 정전기를 띠고 있는 만큼 대기 중 떠다니는 먼지에 달라붙어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하지만 유해물질과 결합한 음이온이 호흡을 통해 체내로 들어오면 몸에 해로울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음이온 자체가 살균기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전자와 같은 음전하를 가진 물질을 말하는 음이온을 공기 중으로 배출하는 신비의 물질이나 공기청정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유사과학에 빠진 제품은 음이온 기기뿐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유사과학이 적용된 제품으로 게르마늄 팔찌를 비롯해 육각수와 수소수 등 물을 이용한 제품을 꼽는다. 게르마늄 팔찌는 '건강팔찌'라는 이름으로 수십만 원의 고가에 팔리고 있다. 심지어 홈쇼핑에 등장해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일부 업체들은 게르마늄 팔찌에서 음이온이 방출될 뿐 아니라 게르마늄 성분이 체온을 높여 스트레스 완화, 신경통·관절염·두통 완화 등에 효과가 있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게르마늄 팔찌가 건강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몇몇 업체는 지난해 국제학술지에 게르마늄 팔찌 효능을 입증한 논문이 발표됐다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해당 학술지 내용이 부실하고 국제학술지 목록에도 존재하지 않는 가짜 논문"이라고 경고했다.
수소수와 육각수 등 물이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과학자들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물에 녹아 있는 극미량의 수소가 체내에서 건강에 좋지 않은 활성산소와 결합해 이를 중화시킨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일부 업체가 인용하고 있는 논문 또한 수소수가 아닌 수소가스로 진행한 실험인 것으로 밝혀졌다.
홍영준 한국원자력의학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은 "전문의약품이나 의료기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정 질병이나 건강에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는 식품이나 제품이 있다면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어떤 식품을 먹거나 기기를 몸에 찬다고 해서 건강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 원적외선으로 해독을? 먹기만 하면 지방분해?…일단, 의심부터 하세요
최근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고다. 해당 업체는 파스처럼 생긴 패치를 발바닥에 붙이기만 하면 우리 몸에 있는 독소가 빠져나온다고 주장한다. 사용한 패치를 유명 기관에 맡겨 성분을 조사한 표를 올려놓기도 한다. 표에는 사용하고 난 패치에서 곰팡이, 콜레스테롤, 나트륨 등이 발견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삼성서울병원 전문의는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에서 분해돼 배출된다"며 "콜레스테롤이 피부를 뚫고 곧바로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곰팡이 역시 마찬가지다. 무좀에 걸린 사람이나 제대로 씻지 않아서 발에 남아 있던 곰팡이가 패치에 묻을 수 있지만 체내에 있던 곰팡이가 패치를 붙였다고 해서 피부를 뚫고 나올 리 없다.
2010년 미국연방거래위원회(FTC)는 발에 붙이는 일본산 디톡스 패치에 대해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리고 벌금을 매기는 한편 허위광고를 금지시켰다. 당시 일본 제품 역시 발에 붙이면 노폐물과 중금속이 제거되면서 피로, 불면증, 두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광고했다.
"먹기만 했는데 살이 빠졌다. 실화냐?"라는 광고 문구를 이용하며 먹기만 하면 지방이 분해되고 체중 감량이 가능하다는 건강기능식품 광고도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다. 대부분 '가르니시아 캄보지아' 성분이 들어 있어 지방 축적을 줄일 수 있다고 광고한다. 일부 사람들은 운동을 안 하고 해당 제품을 먹기만 했는데도 살이 빠졌다며 실제 체험담이라는 말을 넣어 홍보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르시니아 캄보지아를 활용한 많은 연구에 따르면 체중 감소에는 크게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몇몇 제품은 해당 제품을 기름이 담긴 물에 넣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기름이 분해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속에서 기름이 녹는 현상과 체내에서 지방이 분해되는 메커니즘은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마치 해당 건강기능식품을 먹으면 기름이 분해되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 것이다. 녹차 추출물 성분이 포함된 다이어트 식품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녹차를 마시면 된다. 이 밖에도 먹으면 키가 크는 제품이나 과일에 묻은 농약을 제거한다는 제품 등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과학'이라는 이름을 넣어 판매하는 비과학적인 제품이 상당수다.
과학자들은 SNS에 올라오는 광고를 볼 때 과학적인 근거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사이비 과학에 빠지지 않으려면 '비판적 합리주의'로 접근해야 한다"며 "우주에는 공짜가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노력과 투자가 수반되지 않은 혜택은 환상일 수밖에 없다"며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영구동력, 특정 식품이나 기술에 대한 과대한 포장은 처음부터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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