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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ㄹ혜는 없다" 자신감 되찾은 시민사회

류. 2016. 11. 6. 01:06
"ㄹ혜는 없다" 자신감 되찾은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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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디어다음] 사회일반 
글쓴이 : 경향신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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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퇴진”은 특정 단체 중심이 아닌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삼삼오오 저항’

ㄹ혜. 2015년쯤 등장한 이 말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칭한다. 한글 자음 ㄹ이 ‘근’자와 엇비슷해 보인다는 점을 이용했다. 세월호 침묵시위 기획자들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영장을 받아 특정 기간의 카카오톡 대화록 전체를 들여다본 사실이 밝혀진 뒤에 등장했다. 외국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설치해 사적 대화를 나눌 공간을 옮기고, 공개된 공간에서는 ‘박근혜’라는 이름에 걸리지 않게 ㄹ혜로 사용하는 누리꾼들. 불과 1년 전, 아니 몇 달 전의 모습이었다. 현재 이 두려움은 온데간데없다. 10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린 이후 대학과 각종 시민사회단체의 시국선언도 잇따랐다. 보수정부 9년 동안 누적된 두려움을 떨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분노가 결집하고 표현되는 양상은 2008년 촛불집회 때와도 다르다.

11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16가족협의회 소속 한 회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정지윤기자
4·13 총선 계기로 시민들 변화
분노의 기폭제는 단연 ‘최순실 게이트’다. 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5%로, 한국 헌정사에서 최저치를 기록했다. 독일에 있던 최순실씨(60)의 귀국과 검찰 수사가 보도되면서 한 주 사이에 10%포인트가 빠졌다. 세월호 참사 등 웬만한 일이 벌어져도 떨어지지 않아 ‘콘크리트 지지율’로 불렸던 30% 선이 지난 9월에 무너진 이후 약 40일 만이다. 20대와 30대에서는 1%, 40대와 50대에서도 3%에 불과하다. 60대 이상에서 13%를 기록했다. 새누리당 지지율은 18%로, 민주당(31%)의 3분의 2 수준이 됐다.

시민들의 마음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4·13 총선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광장의 모멘텀이 열렸다”고 말했다. “총선 결과를 보면서 ‘나만 쌓인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소위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내가 왜 쌓였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여소야대 국회가 형성되고 제1당이 바뀐 선거 결과에서 시민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시민사회에서 감춰왔던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계기가 터지면 광장으로 분출되는 대규모 운동이 나타난다. 시민사회가 선거를 매개로 재조직되는 과정이다. 이 패턴은 독재정권에서도 이어져 왔다. 1978년에 치러진 제10대 총선에서 박정희의 공화당은 야당 신민당보다 의석수는 많았지만 득표율은 1.11% 더 적었다. 이듬해 YH무역 사태와 부마항쟁이 벌어지며 10·26으로 이어져 박정희 유신정권이 몰락했다.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는 전국구 의석을 불균등하게 배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저조한 의석을 획득했다. 276석 중 128석을 야당이 가져가면서 시민사회는 ‘직선제 개헌’의 자신감을 얻었고,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져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렸다. 서 연구원은 “선거의 기능은 유권자의 생각을 집합적으로 드러내게 하는 데 있다”며 “4·13 총선 결과가 그 역할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다수’라는 자신감 위에서 조직된 분노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민중총궐기 대회’ 형식의 대규모 집회, 대학가 시국선언, 교수·예술인단체 시국선언은 기존의 여러 사회운동과 다르지 않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정보공유 등의 형식도 마찬가지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7월 말 본부 점거농성 기간 민중가요 대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러 화제가 됐지만, 2008년 촛불집회에서도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 불렸고, 2011년 서울대 법인화 반대 본부 점거농성 때도 학생들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을 불렀다. ‘대자보’ 자체도 2008년 촛불집회 때나 2013년 철도파업 때도 등장했다. 다양한 방식의 저항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대중가요’로 상징되는 세련된 운동 방식이나 ‘집회’로 상징되는 전통적 저항에 많은 인원을 동원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신문·방송을 통해 얻은 정보를 취합하고 위키백과 등에 기록해 주도적으로 서사를 만들려는 흐름이다.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돼 사이트를 막론하고 널리 공유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복잡한 최순실 게이트를 정리한 내용인데 ‘정운호 나비효과’로 인식됩니다.” 심현덕 참여연대 민생희망팀 간사의 말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시민의 분노
‘정운호 나비효과론’에 따르면 최순실 게이트의 발단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불법도박이다. 지난해 10월 검찰이 해외에 도박장을 운영한 조직폭력배를 구속해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 전 대표의 불법도박 사실이 드러났다. 정 전 대표가 거액의 수임료를 주고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법조비리 문제가 불거졌고,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이슈가 됐다. 진경준 전 검찰총장의 재산 증식 과정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연결고리가 밝혀졌고, 언론이 뒤쫓는 과정에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매개로 한 ‘최순실’의 존재가 밝혀졌다는 내용이다. ‘나무위키’ 등에도 등재되고 인터넷 카드 뉴스 등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이 내용은 누리꾼들 사이에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 간사는 “최순실 게이트가 ‘정운호 나비효과’라는 줄거리로 해석되면서, 이 사태는 역대 정권의 측근 비리와 차원이 다르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 정·관·재계가 총체적으로 부패로 연결돼 있으며, 국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운호 나비효과’와 관련된 게시물에 주로 달리는 댓글은 “나라꼴이 대체 어떻기에 불법도박장 하나 덮쳤는데 줄줄이 비리가 나오는 것이냐”였다.
가장 영향력 있는 위키사이트인 나무위키에 정리된 사건 흐름도. 최순실 게이트의 시발점으로 정운호 전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의 원정도박으로 촉발된 법조비리를 꼽았다. / 나무위키 화면 갈무리

대통령과 비리 관련자들에 대한 즉각적 분노 못지않게 전체 구조를 이해하려는 욕구가 높다. 시스템에 대한 이해는 현재 자신이 속한 집단의 문제점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이는 시민사회가 위축된 가운데서도 각종 사회적 저항들이 명맥을 이어 가능했다.

성균관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신민주씨(22)는 3일 학내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2014년 3월 성균관대 학생회와 인권동아리 학생들은 세월호 유가족 전국 순회 간담회를 위해 강의실을 빌렸으나 학교 측이 ‘정치적 성격의 행사로 면학 분위기를 해친다’고 불허해 수원 율전캠퍼스의 학생회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 해 10월에는 학교 측이 조형훈 생명공학대학 학생회장에게 학칙 위반이라는 이유로 장학금을 취소해 논란이 됐다. 신씨는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며 내용을 알아보니 학교 측이 ‘자랑스러운 성균관인상’을 수여한 인물 중에 정권에 관계된 사람이 많고, 심지어 교수로 재직하는 인물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국정교과서, 노동개악, 백남기 농민 등 여러 가지 사건이 끊임없이 터지며 분노와 실망은 쌓여가는 상태였다. 우리가 그동안 겪던 부조리한 일들의 원인과도 연관돼 있음을 알게 돼 더 열심히 사안을 공부하게 되고 저항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명륜동캠퍼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은 줄을 서서 서명했다.

10월 27일 서울 성균관대학교 비천당 앞마당에서 총학생회의 시국선언 기자회견 도중 학생들이 국정농단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법적책임을 요구하는 서명을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 서성일 기자

4일 박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해 죄송하다”며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도 응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를 발표했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신모씨(29)는 “감정에 호소하지 말고 정확히 잘못한 부분을 짚고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며 사과 내용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신씨는 지난 9월 성과연봉제를 반대해 열린 금융권 총파업에 참여했다. 신씨는 “직장에서 거의 매일 야근하는 일 뿐 아니라 다양한 부조리를 겪고 있다. 여직원들은 아직도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화장이 무너지면 안 된다’ 따위의 규칙이 배포된다. 사회 전체적으로 현대사회에 맞지 않고 과거의 관행에 얽매여 있다”고 말했다. 파업 당시 ‘불법파업’과 ‘불이익’을 경고하는 회사 측의 문자와 ‘합법파업’이라는 노동조합 측의 반박을 담은 문자로 휴대폰이 끊임없이 울렸다. 신씨는 “노조 측의 논리가 더 설득력 있었다. 파업 과정에서 직원들의 퇴근을 시키지 않는 지점 사례를 접하며 구성원의 기본적 권리를 무시하고 수장이 시키면 하는 이 나라의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분노를 더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행한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이란 말에 담긴 분노가 최순실 게이트로 자연히 연결됐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형성된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는 ‘미개함의 원인’을 일정 부분 규명해 분노를 지피는 모양새 띠고 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기억투쟁’
3일 대학 및 고등학교 내 시국선언이나 대자보 부착이 방해받은 사례를 수집한다는 트위터 계정이 만들어졌다. 세월호 참사 직후 벌어진 각 대학가의 대자보 훼손 사례나 학교 측의 불허 사례를 겪었기에 생겨난 것이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관리전문대학원 교수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된 것이 ‘기억’이다. ‘기억투쟁’이란 한 번 뜨겁게 분출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자연히 ‘기록’에 중요한 방점을 둔다”고 말했다.

‘보수정부 학습효과’에도 단련이 돼 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군사정부 시절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방식은 운동의 지도자에게 신체적 탄압을 가해 순교자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민주화 이후 보수정부인 이명박 정부의 경우 순교자를 만들지 않는 대신 ‘운동의 지도자’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을 겨냥하는 수단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시위 참여자 가운데 무작위로 집시법 위반, 도로교통법 위반 등을 적용해 수사한다. 벌금형이 나오거나 무혐의가 나오더라도 검찰에 불려다니도록 해 위축시켰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놀랐지만 특정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조직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보고 자발적으로 군중이 나온 집회의 성격을 파악하고 맞춤형 대응을 한 것이다. 사진사 김정근씨의 경우 201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조롱하는 트위터를 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김씨는 공황장애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보수정부의 시민사회 길들이기는 실패했다. 신 교수는 “공권력의 대응에 처음에는 놀란 시민들도 보수정부 9년째가 되면서 패턴을 파악했다.”그는 또 “2008년에는 다음 아고라가, 2012년에는 팟캐스트가 대안 미디어로 각광받으며 감정적인 고양을 불러일으켰지만 내부에서의 의견이 동질화되면서 고립화되는 패턴을 반복해 겪으면서 지금의 시민적 저항 움직임은 보다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복경 연구원은 “세월호 등 상황에서 한때 ‘일베’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려는 시도가 정치학계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전국경제인연합의 어버이연합 지원 등의 뉴스를 통해 이 같은 여론이 시민사회에서 정상적으로 형성된 여론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정부와 재벌의 실체를 깨닫게 되는 순간 두려움은 자신감으로 변하고 위축된 만큼 분노는 강렬하게 터져나올 것이라는 게 서 연구원의 분석이다.

박근혜 퇴진을 매개로 나타난 시민사회에도 두드러지는 주체는 같은 문제의식을 지닌 ‘삼삼오오’의 저항이다. 노동현장이나 특정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결집된 시민들이 아니라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느슨한 공동체다. 이는 역사학자들과 교육자들이 중심이 된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이나, 페미니즘 등 여러 사회 운동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젊은 역사 연구자들은 국정교과서 강행에 대응하기 위해 ‘만인만색’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국정교과서 관련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팟캐스트와 미디어 다음 등에 칼럼을 연재해 대중들이 역사를 더욱 친숙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도 생산하고 있다. 여성주의 지식생산자 조합 페미디아도 페이스북을 통해 연구자·번역가 등 20·30대 여성들이 만들어냈다. 강남역 10번 출구, 구의역 9-3 승강장 등 오프라인 ‘쪽지 추모’ 등도 느슨한 연대의 전형이다. 박 정부 기간의 지속적 실정이나 사건·사고는 시민사회가 위축된 가운데서도 ‘삼삼오오’의 연대를 만들어냈고, ‘삼삼오오’의 연대는 보수정부가 허점을 파고들기 어려울 정도로 전략적으로 진화했다.

오프라인 ‘쪽지추모’ 등 느슨한 연대

11월 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건물 3층에서 열린 서촌리본공작소에서 시민들이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다. / 박은하 기자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문제에 대한 분노와 울분이 현재 시민사회의 부활 국면과 맞물려 시민들의 기억으로 다시 소환되고 있다. 건국대 학생 김정현씨(26)가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군대에 있었습니다. 내무반 전체가 뉴스를 보면서 울었어요. 군대 내무반이 그렇듯 구성원이 정말 다양했습니다. 미국 유학 중인 사람도 있었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생업에 뛰어든 사람도 있었는데, 전부 모두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똑같이 울었습니다. 시민들을 편가르는 사건으로 전개됐지만 당시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을 겁니다.” 우모씨(37)는 지난 9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 들른다. 서촌노란리본공작소가 열리는 날이다. 부직포를 가위로 잘라 두 번 접어 리본을 만든다. 우씨는 이 간단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 때 마음이 아팠는데,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씨는 공방에 가서야 비로소 두려움에 마음을 숨기고 살았던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정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친구들과의 단체채팅방에서도 최근 ‘최순실 게이트’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은 한결 더 낮아졌다. 대통령 퇴진 요구가 시민사회의 전반적 자신감을 불어넣으면서 말 못했던 화제를들 끄집어내고 있다.

4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담화 이후 공권력은 다시 시민사회의 저항 흐름을 수습하는 태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은 5일 백남기 농민 장례식과 이어 열리는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가두행진 불허 방침을 밝혔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 사과에 하루 앞서 중앙위원회를 열어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중앙위는 성명서에서 “일부 언론과 야당의 거대한 음모가 정국을 혼란 속으로 몰아가며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며 “우리 이제 모두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정권재창출보다 더 중요한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더 나아가 빨갱이 나라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일치단결하자”고 촉구했다. 김정현씨는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 것은 공권력의 수사도 문제지만 대학생의 경우 취업 불이익에 대한 고통이 크다”며 “직장인들은 여전히 게시물을 공유하기보다는 ‘좋아요’를 누르는 소극적 저항을 택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의 부활 국면에는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신진욱 교수는 “시민사회에서 100명이 같은 생각을 하더라도 서로 이를 알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같은 생각을 하는 100명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될 때 네트워크가 발생하고 새로운 흐름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명박 정권 당시 방송 장악으로 대부분의 미디어공간을 빼앗긴 데 비해, 현재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더라도 보수언론도 적극적으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보도하고 시민들의 저항 움직임을 옹호하는데, 이런 흐름들이 저항적 시민여론을 만들어내고 시민들이 다시 저항적 보도를 하는 매체를 지지하면서 커져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