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세월호 침몰 참사

"선장이 '조난 신호 버튼'조차 안 누르고 배를 뜨다니.."

류. 2014. 4. 23. 22:38

"긴급 채널로 '메이 데이' 반복했어야" 비판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대부분 살았을 것"
비정규직 선장 '고용 불안' 문제점 지적도






"선장이 긴급채널로 '메이데이'를 반복했어야 해요. 승객을 두고 배를 떠나면서 '조난 신호 버튼'조차 누르지 않았다니…."

목포해양대 실습선인 새누리호의 이긍수(57) 선장은 23일 세월호 사고 뒤 충격에 휩싸인 동료 선장들의 상태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비록 급박했지만 시간이 있었다"며 "침몰 순간 승객을 선실에 대기시킨 것이 치명적인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고 직후 동료 선장들한테 "세월호 이준석(69·구속) 선장이 선장은 맞느냐. 엄중한 방법으로 속죄해야 마땅하다"는 등의 격앙된 목소리를 들었다고 전했다.


선장들은 특히 이 선장의 이해할 수 없는 판단 착오와 승객보다 먼저 달아난 행위을 두고 참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고 직후 초단파(VHF) 무선통신의 긴급채널 16번으로 '메이데이'(mayday·국제적인 긴급 조난 부호어)를 세차례 반복하는 기본을 준수하지 않은 데 대해선 이구동성으로 탄식했다.

20년 경력의 상선 선장 ㄱ씨도 "승무원들을 정위치시켜 구명정을 띄우고, 승객들한테 구명복을 입힌 뒤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대부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타실의 '조난신호'(Distress Signal) 버튼조차 누르지 않고 도망쳐 다른 선장들까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라고 한숨지었다.

50대 초반의 선장 ㄴ씨는 "수세기 동안 각국의 선장들이 목숨과 맞바꾸며 쌓아온 명예와 전통을 단숨에 깨뜨리고 말았다"며 "요즘 어디 가서 선장이라고 말하기가 창피하다"고 한탄했다. 1912년 4월 빙산에 충돌한 타이타닉호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인명을 구조하다 배 안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선장은 1970~80년대만 해도 비행기 조종사만큼 인기 직업이었다. 4년제나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20여년 경력을 쌓아야만 어렵게 도달할 수 있는 고연봉 전문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양성기관 출신 해기사(일정한 기술과 지식을 가진 선원)가 늘어나면서 선장의 권위와 연봉도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세월호 이 선장은 다달이 270만원을 받는 1년짜리 계약직 '대리 선장'이었다. 현재도 대형 상선이나 외항 선박을 타면 연봉 1억원을 받는 선장들과 견줘 신분과 보수가 매우 낮다.

외항선을 타는 선장 ㄷ씨는 "이런 대우를 받는 선장한테 자부심과 책임감을 기대할 수는 없다"며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선장이 '화물이 과적이라 출항할 수 없다'고 회사에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국해기사협회가 집계한 통계를 보면, 2012년 기준 선장은 모두 6179명이었다. 취업중인 해기사 2만2456명 중 27.5%가 선장이다. 선종별로는 외항선 1017명, 내항선 1783명, 원양어선 306명, 연근해어선 2105명, 해외취업 상선 742명, 해외취업 어선 63명 등이었다. 선박 6743척의 선장 평균 월급여는 601만원 수준이었다.

한국해기사협회 쪽은 "선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등의 이른바 '시맨십'이 성문화되지는 않았지만 해양인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고는 선장의 직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명예로운 전통을 이어가도록 교육과 훈련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http://media.daum.net/issue/627/newsview?issueId=627&newsid=20140423204006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