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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 또 한 구의 시신이 어두운 바다 속을 헤매다 진도 팽목항으로 들어왔다. 실종자 가족은 희생자 가족이 되어 오열하고, 언론은 이를 무기력하게 보도할 뿐이었다. 21년 전 서해 훼리호 침몰 이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는 이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마저 침몰시키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스스로 불신을 자초하며 침몰하고 있다.
16일부터 23일까지 일주일간 언론은 무기력했다. 과거엔 조롱을 당했지만 이번엔 ‘멸시’를 받았다. 진도 팽목항 현지에서 기자들은 수첩을 꺼내들고 다닐 수 없었다. 취재하다 들키면 실종자 가족이 핸드폰을 빼앗아 바다에 던져도 멍하니 바라봐야 했다. 세월호 침몰 첫째 날부터 진도 현지에서 취재한 기자는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어 슬픈 상황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도 꼴 보기 싫은데 기자들이 보도까지 제대로 안한다고 느끼니 더 분노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재난은 반복돼왔고, 기자들의 취재관행도 전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실종자 가족과 시민들의 ‘분노’는 지금까지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왜 그럴까.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과거보다 굉장히 많은 매체가 현장으로 일제히 달려 나가 속보경쟁을 하다 보니 취재를 당하는 입장에선 무례하거나 반인권적인 취재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진도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선 실종자 가족보다 취재진의 숫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과거와 달라진 건 취재진 숫자만이 아니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20년 전 서해 훼리호 참사를 취재할 때는 ‘삐삐’와 노트북만 있었다. 지금은 인터넷과 SNS가 등장하면서 언론의 작은 것 하나도 시청자와 독자들이 놓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와 달리 언론의 취재과정이나 보도내용이 24시간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비춰지며 오보가 눈에 띄고 여론이 즉자적으로 반응하며 언론사의 ‘사과 릴레이’가 이어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절박하고 애통한 상황에 있는 피해당사자 가족 입장에서 언론이 취재는 열심히 하는데 막상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이 비극의 씨앗이다.
제정임 세명대 교수는 “실종자 구조 수색작업이 왜 이리 더딘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언론은 속 시원히 알려주기보다는 짜놓은 것처럼 정부가 의도하는 대로 앵무새처럼 발표를 전달할 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실종자 가족들과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시민의 입장에서 궁금한 것을 시원하게 얘기해주지 않고 마치 통제된 정보만 내보내는 인상을 받은 것이다.
진도 팽목항에 나가있는 기자들은 밤을 새가며 취재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응원이나 지지보다 비판이 앞서는 건 결국 보도내용 때문이다. 한 실종자 가족은 “언론이 제대로만 쓰면 누가 취재를 말리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가족은 “우리 말을 들어주는 언론은 한 곳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피해자가족과 시민들이 처음부터 언론에 대한 멸시로 일관해온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 제대로 된 언론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정부발표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오보를 양산했고, 단순한 팩트 중심으로 속보 경쟁에 나섰다. 똑같은 뉴스가 지겹게 반복됐다.
일각을 다투는 재난상황에서 언론은 초기부터 정부를 강하게 비판해 구조작업에 속도를 내게 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일부 언론은 이번 사안을 특수한 소수의 문제로 규정해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가리고, 다른 언론은 여전히 높은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도했다. 또 다른 언론은 검색 어뷰징을 이용해 안산 단원고 교감의 사연마저 조회수를 올리는데 이용했다.
“실종자 가족 김중열씨 따님의 시신이 발견 돼서 (생방송) 연결을 못하게 됐습니다….” 지난 21일 JTBC <NEWS9>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삼킨 손석희 앵커만이 이번 세월호 보도에서 빛나고 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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