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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화성 8차사건 윤씨 인터뷰 "죽어도 상관없다며 고문" "최 형사, 장 형사가 고문"..윤씨 체모만 중금속 분석

류. 2019. 10. 9. 20:31

화성8차 옥살이 윤씨 "체모 뽑아줬더니 현장서 내것 나왔다더라"


"다리 불편한데 쪼그려뛰기도 시켜
현장 검증도 경찰 각본대로 진행
돈보다는 명예 찾고 싶을 뿐"
당시 경찰 "가혹 행위 없었다"

“(나를 고문한) 형사들에게 묻고 싶어요. 정말로 내가 범인이고 자신들은 당당한지. 양심이 있다면 진실을 말해달라고요.”

11일 청주에서 만난 윤모(53)씨는 약 1시간 30분 동안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8차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여년 간 옥살이를 했다.

최근 화성 사건 용의자 이춘재가 이 사건이 자신의 소행이라 주장하면서 그는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윤씨는 “솔직히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Q : 1988년 9월 사건이 발생했고, 89년 7월 체포됐다. 당시 상황 설명을 해달라.
A : 사건 당일 집에서 자고 있었다. 체포 됐을 때는 회사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경찰이 갑자기 와서 잡아갔다. 지서(당시 파출소를 부르던 말)로 잠깐 들렀다가 야산으로 데리고 가더라. 깜깜한 가운데 형사들과 봉고차를 타고 올라갔고, 거기서 형사가 몇 마디 했던 기억이 났다. 이후 다시 경찰서로 가서 사흘 내내 조사를 받았다.


Q : 당시 5~7시간 만에 자백했다고 알려졌다.
A : 아니다. 사흘 동안 잠도 안 재우고 조사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한 게 아니다’고 하니 주먹으로 맞고 발로 차였다. 쓰러진 뒤에도 뺨을 맞았고 다리가 불편한데 쪼그려뛰기도 시켰다. 형사가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고 겁을 줘서 자백했다. 거기(경찰서)서 죽어나간들 신경도 안 쓰는 시대였다.
윤씨는 자신을 고문한 형사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다. 기자가 당시 수사팀 사진을 보여주자 “이 사람은 A형사인데 나를 고문한 적이 없다”는 말도 했다.


Q : 당시 형사들은 가혹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A : 나도 보도를 봤다.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그 당시 수사가 당당했는지. 양심이 있다면 진실을 말해줬으면 한다.


Q : 2차 현장 검증 당시 높은 담벼락을 한 번에 훌쩍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A : 잘못 알려졌다. 당시 수사기록에는 담을 넘었다고 돼있는데 나는 담을 넘지 않았다. 넘는 시늉만 했다. 그것도 형사들이 뒤를 받쳐줘서 가능했던 거라고 친척들에게 들었다. 그 시절 시골집 담들은 비가 오면 흔들거렸다. 내가 그 당시 담을 잡았을 때도 (담이) 흔들거렸다. 내가 만일 담을 실제로 넘었으면 나도 같이 (떨어져서) 가버리지 않았겠나.


Q : 현장 검증은 어떻게 진행됐나.
A : 경찰이 각본 짜서 했다고 보면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시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나를 세뇌 시킨 것 같다. 나도 겁 먹으니까 (허위 진술이) 나오더라. 내가 피해자 방 위치를 정확히 지목했다는 보도가 있던데, 나는 그 집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피해자 오빠랑 친구 사이라는 보도도 있지만 실제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다. 동네가 좁고 시골에서는 2~3년 연차 나이끼리 친구 먹으니까 봤었을 법도 하지만 누군지도 기억이 안난다.


Q : 피해자 방에서 본인의 체모가 나온 부분은 어떻게 보나. 경찰 조사 초기에 본인이 범행을 부인했더니 거짓말 탐지기에서 ‘거짓’ 결과가 나왔다고도 알려졌다.
A : 생각해 보시라. 가본 적도 없는 집에서 어떻게 체모가 나오나. 내가 아는 건 당시 체포 직전에 5~6번 정도 체모를 뽑아 줬던 것 뿐이다. 경찰 조사 당시 내 체모에서 티타늄 성분이 나왔다거나 자세한 분석 결과는 듣지 못했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 역시 한 20분 간 받았는데 정작 나는 결과를 듣지 못했었다.


Q : 1심 재판에서는 범행을 시인했다가 항소심부터 이를 부인했다.
A : (구속돼서) 구치소에 있을 때 선배들(윤씨는 교도관과 수형자를 이렇게 불렀다)이 ‘넌 무조건 사형이다’고 하더라. 사형제도도 있었던 시절이고. 검사도 ‘넌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이라고 해 사형은 면해보려고 1심에선 시인했다. 그런데 2심에서는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담당 최모 검사한테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무시당했다. 검사만 잘못된 걸 바로잡아줬어도 난 여기까지 안 왔을 거다. 그 검사한테도 자신이 지금 변호사로서 당당한지 묻고 싶다.


Q : 변호인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했나.
A : 당시 친척이 변호인을 선임하려 하니까 그 때 돈으로 1500만원을 요구했다고 들었다. 그 돈이 어디 있나. 하는 수 없이 국선 변호인을 썼는데 변호인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결심 때만 와서 ‘선처해달라’고 한 게 전부인데 잘 들리지도 않았다.


Q : 교도소 생활은 어땠나.
A : 재심을 하려고 했지만 주위에서 안 된다는 얘기만 들었다. ‘내가 계속 살아야 하나, 죽으면 편할 텐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5명의 선배(교도관)들 때문에 살 의지가 생겼다. 그 중에 지금은 돌아가신 분이 있는데 나에게 ‘죽을 바에야 살아서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했다. 다른 교도관들도 ‘희망을 가지고 살라’고 했다. 그 덕에 사고 안 치고 교도소에서도 1급 모범수로 가석방될 수 있었다. 이 분들이 아니었다면 난 이 세상에 없었을 거다.
윤씨는 재심 무죄 판결을 끌어낸 경험이 있는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돈보다는 명예를 찾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한편 중앙일보는 ‘최 검사가 재수사 요청을 무시했다’는 윤씨 주장에 대해 최 변호사 사무실에 입장을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츌처





인터뷰 동영상

진짜 범인도 이렇게 고문하면 안될텐데, 만약 정말 무고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윤 씨는 자신을 수사했던 경찰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과정과 법원재판 에서도 부당한 일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내용은 신선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화성 8차 사건이 발생한 지 30년이 넘게 지났지만 윤 씨는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의 성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윤 씨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갑자기 최 형사가 와서 날 수갑을 채우더라고. 그리고 날 심문한 신 형사라고. 신 형사인가 심 형사인가 나오더라고. 그 당시에 장 형사가 아마 꼈을 거야. 장 형사하고 형사 5명인가 있었어 형사계장하고."


자백하면 형량이 줄어들 것이라며 경찰이 자신을 회유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윤 씨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5~6년은 받을 수 있겠다고 하더라고. 형사계장 말은 10년 이야기를 하더라고. (자백하면) 10년 정도다. 아무 것도 모르는 판국에."


검찰 조사에서는 겁박에 가까운 말도 나왔다고 했습니다.


[윤 씨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검사 조사 과정에서 이거 사형이라는 거야 자백 안했을 경우에. 자백하면 무기나 20년을 해줄 수 있다 해서. 처음에는 나도 살고 봐야 될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1심 재판까지 자백을 유지했던 윤 씨.

재판 과정에서 국선변호인의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윤 씨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국선변호인을) 1심 결심 때 한 번 보고 끝이에요. 변호인이랑 이야기해본 기억이 없어요. 변호가 있어야 뭐를 하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습니다.


[윤 씨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1심이 끝나고 내가 항소했잖아. (당시 검사에게) 내가 재수사 요청을 했지. 넌 재수사가 안 된다는 거야. 이미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경찰이 윤 씨를 찾아온 건 지난 6일이었습니다.


경찰은 검거과정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물었고, 윤 씨는 "당신들이 만들어낸 사건"이라며 이같은 내용을 상세히 진술했습니다.


이후 경찰은 윤 씨가 고문을 했다고 지목한 형사들을 조사하기로 했고, 당시 수사 검사와도 조사 일정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1009194549251



[단독]'8차 사건' 윤 씨 심경 토로.."죽어도 상관없다며 고문"



인터뷰 동영상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가 모방범죄로 알려졌던 8차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 이춘재 대신 이 사건 범인으로 옥살이를 한 윤모 씨에게 시선이 쏠렸죠.


채널A가 가석방으로 출소한 윤씨를 단독으로 인터뷰했습니다.

물론 누가 진짜 범인인지는 앞으로 밝혀져야합니다.

다만 윤 씨는 자신은 범인이 아니고, 고문과 협박에 못이겨서 거짓 자백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먼저 이다해 기자가 당시 수사 상황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이 일어난 건 1988년 9월 16일.

집 안에서 자고 있던 13세 박모 양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채 발견됐습니다.


88올림픽 개막일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경찰은 인근에 거주하는 남성 수백 명의 체모를 채취해 수사에 들어갔고, 이듬해 7월 윤 씨를 범인으로 체포해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윤 씨는 이 자백이 경찰에 강압 수사 때문에 거짓으로 진술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체포된 직후 간 곳도 경찰서가 아닌 야산이었고, 협박은 야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기억했습니다.





[윤 씨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야산) 정상이 있었거든. 순순히 자백해라. 협박조로 얘기했어요. (경찰이) 덩치가 좀 있었고 유단자라고 얘길하더라고. 겁을 많이 줬어."


경찰 조사는 고문과 협박의 연속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소아마비 때문에 한 쪽 다리를 못쓰는 자신에게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는 겁니다.


[윤 씨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쪼그려뛰기 시키는데 못하니까 발로 걷어찬 기억이 나. 돌아가면서 손바닥으로 때리고 주먹으로 때리고. 넘어진 걸 어떤 형사가 뺨 두 대를 때리더라고, 정신이 없어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생각이 안 나"


식사나 수면 같은 기본적인 권리도 무시당했습니다.


[윤 씨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3일 동안 잠을 못자면 그 사람은 사망이에요. 내가 잠을 자려면 깨우고 깨우고. 내가 하도 목이 타서 물 한 병 달라니까 물도 못 주겠다는 거야. 알아서 자백해라. 자백하면 다 해주겠다."


진술서는 경찰이 불러준 대로 썼고, 지장도 강제로 찍었다고 기억했습니다.


[윤 씨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경찰이) 여기서 죽어 나가도 상관없다는 거야. 한두 명 죽어도 눈 하나 감짝 안 한다는 거지."


현장 검증도 엉터리였다고 말합니다.


경찰이 짠 각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윤 씨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형사가 앞에서 이렇게 하라고 얘기를 한 게 생각이 나. 담이 많이 흔들리더라고. 형사가 잡아준 게 생각이 나. 넘어간 기억이 없지"


고문의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윤 씨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유단자들이라 급소만 때리거든. 30년이 지난 지금 후유증이 와요. 병원 간 일이 없어. 멍이 없어 지금. 가끔가다 내가 온수 목욕을 가고 탕에 가면 표시가 나더라고 멍자국이 나와."


윤 씨는 당시 경찰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며 지금도 악몽에 시달린다고 전했습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1009194450228




"이 다리로 어떻게" 담 넘었다는 윤상여씨, 실제 걸음걸이는?




비교

화성 8차 사건 검거 당시 22세 윤씨 걸음걸이



윤모 씨는 채널A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모진 고문에 허위 자백을 했고 한쪽 다리가 안좋아서 현장검증도 엉터리였다는 주장을 폈죠.



하지만 당시 수사 관계자들은 현장 검증에서 윤 씨가 담을 스스로 넘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배영진 기자가 양쪽의 주장을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왼쪽 다리가 힘없이 흔들립니다.


똑바로 가는 것조차 힘에 부칩니다.


윤 씨는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 탓에 제대로 걷지 못합니다.


이런 데도 당시 경찰과 검찰이 일방적으로 범인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합니다.


[윤모 씨 /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담이 옛날 담이에요. 그 담이 흔들려. 내가 넘어가면 담이 넘어갈 정도야. 담을 내가 이 다리로 어떻게 넘겠어."


그러면서 자신은 담을 넘지 않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윤모 씨 /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자]
"형사가 잡어준 게 생생해. 담을 넘어갈 때 재연했을 떄. 넘어간 기억이 없지. 넘지도 않았고."


하지만 취재진과 만난 당시 수사 검사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현장 검증에서 담을 넘는 모습을 확인했고, 현장에서 발견된 독특한 모양의 발자국이, 발 뒤꿈치를 들고 걷는 윤 씨의 것과 일치했다는 겁니다.


폭행과 가혹행위를 했다고 지목된 형사들도 경찰 조사에서 "국과수의 감정 결과가 확실해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고문을 당했다는 윤 씨의 주장과 고문은 없었다는 수사 관계자의 반박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NbNFmqkeoN?f=p



"억울하다" 울부짖었지만..검사도 재수사 '묵살'



[뉴스데스크] ◀ 앵커 ▶


윤 씨는 2심 재판 때부터 검찰에 재 수사를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잘못을 바로 잡아줄 거라고 믿었는데 외면 당했다는 겁니다.

윤 씨는 가혹행위를 했던 경찰, 또 범행을 자백한 이춘재가 이제 진실을 말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MBC의 단독 보도, 윤상문 기자가 이어갑니다.


◀ 리포트 ▶


2심 재판에서부터 경찰의 고문과 강요로 인해 자신이 허위 자백 했다고 주장한 윤 모 씨.

윤 씨는 그때부터 혐의를 벗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고 말합니다.


[윤 씨] "나는 변호사 얼굴을 못봤어요. 국선 변호사 자체들을. 얘기도 못해보고… 탄원서는 나 혼자 해가지고… 그 당시 인권이란 것 자체가 없었어요. 탄원서 정도 받아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되는 거예요."


고향을 떠나 화성에서 혼자 생활하던 윤 씨는 어려운 형편에 변호사를 구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윤 씨] "변호사 선임하는데 1천5백을 달라고 하더라고 그 당시에. 그 당시에 돈이면 지금 한 10억 정도가 넘어가요."


윤 씨는 당시 자신을 기소했던 검사에게 매달렸습니다.


[윤 씨]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니까 검사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시인하면 사형은 면할 거다. 1심에선 어쩔 수 없이 시인했겠지만 2심은 이게 아니더라고요."


윤 씨는 당시 담당 검사에게 억울하다며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윤 씨] "검사가 1심이 끝나고, 2심 때 내가 한번 재수사를 요청했어요. 그런데 그걸 무시했어. 솔직히 말해서, 검사가 조사만 다시 해줬어도 나는 거기까지 가지 않았을 거라 봐요."


윤 씨는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버텼지만, 결국 유죄가 확정됐고, 20년간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명예 회복을 위해 재심을 준비한다는 윤 씨는 당시 수사 관계자들이 진실을 말해주길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윤 씨] "그 당시 수사 당당했는지, 지금 수사가 당당한 건지 난 솔직히 그 사람들한테 묻고 싶어요. 그 사람들 양심이 있다면 솔직히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취재진은 현재 변호사로 일하는 최 검사측에 이와 관련한 해명을 요청했지만,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N6iySQFysz?f=p




밤새 '추궁' 새벽 5시에 자백?.."법의 심판 다시"



[뉴스데스크] ◀ 앵커 ▶

이렇게 여덟번째 사건마저 이춘재의 범행일 가능성이 높아 지면서, 20년 동안 복역했던 윤 씨에 대한 재심이 열릴지가 관심 인데요.


윤 씨는 이른바 약촌 오거리 사건 등 재심 사건을 많이 다뤄 잘 알려진 변호인을 선임하고, 본격적인 재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이기주 기자의 보도입니다.


◀ 리포트 ▶


지난 1989년 7월, 여덟번째 사건의 진범으로 검거된 윤 씨는 경찰에 범행을 모두 자백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MBC와의 인터뷰에선 범행 상황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했습니다.


[윤 모 씨 (1989년 자백 직후)] ("옷차림 같은 건 기억할 수 있어요?") "옷차림은 색깔을 구별 못하겠어요." "여기 제시된 옷이랑 똑같아요?" "…바지는 맞는 것 같아요."


윤 씨는 2심 재판 때부터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했다고 주장했지만, 결과는 유죄였습니다.


[윤 모씨 (2003년 교도소 복역 당시)] ("억울하세요?") "억울하죠. 억울한 건 말도 못하죠."


윤 씨가 30년 만에 변호사를 선임해 재심을 청구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습니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만큼 무죄를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를 배상받겠다는 겁니다.


윤 씨가 선임한 박준영 변호사는 이른바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과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등 재심 사건을 맡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당시 판결이 과학적 증거보다는 윤 씨의 자백에 크게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사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준영/변호사] "새벽 1시에 조사를 했고 새벽 5시에 자백을 했다는 건데 밤새도록 추궁했다는 거죠. 실제 그 수사로 인해서 허위 자백을 했다는 주장을 가볍게 볼 수는 없는 겁니다."


윤 씨의 재심 청구에는 화성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경찰에 검거됐던 사람들의 무죄를 여러 차례 밝혀내며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던 김칠준 변호사도 합류했습니다.


이제 핵심은 윤 씨의 무죄를 주장할 만한 새로운 증거 확보입니다.


형사소송법에선 기존 판결의 증거물이 위조·변조됐거나 허위일 때,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재심이 가능하도록 엄격히 규정돼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춘재가 여덟번째 사건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자백하느냐'가 재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윤 씨가 수사과정에서 당했다는 가혹 행위를 구체적으로 밝혀낼 수 있을지도 관건입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Nk283Bxsmc?f=p




화성 8차사건때 윤모씨 체모만 중금속 분석..이춘재 것은 제외



사건 현장 체모와 혈액형 · 형태 비슷한 윤씨 것만 추려내
용의선상 올라있던 이춘재 혈액형·형태학적 소견차이 이유로 제외
당시 수사관들 "국과수 감정 결과 믿고 수사..고문할 필요도 없어"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유일하게 해결된 것으로 알려졌던 8차 사건의 진범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과거 경찰이 범인으로 특정한 윤모(검거 당시 22·농기계 수리공) 씨의 체모에 대해서만 중금속 성분 등을 검사하는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경찰은 이춘재(56) 씨를 포함해 수많은 용의자의 체모를 채취했으나, 혈액형과 체모 형태를 두고 용의자를 좁혀가는 과정을 거쳐 윤 씨가 범인으로 의심된다며 이같이 조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과학수사 기법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대상이 윤 씨 한사람이었다는 점, 또 이 기법이 현대 과학수사 기법으로 폭넓게 인정받고 있는 DNA 감정 등과 비교할 때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 등은 과거 경찰의 부실 수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더욱이 이 씨는 문제의 화성 8차 사건과 관련해 자백은 물론 유의미한 진술을 한 반면, 윤 씨는 30년 전 항소심부터 경찰의 모진 고문을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다고 줄곧 주장해 온 터여서 사건의 진범이 뒤바뀐 것인지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10일 경찰 등에 따르면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박모(당시 13세) 양이 성폭행 후 살해당한 이른바 '화성 8차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체모 8점이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연구원)에 체모의 성분 분석을 의뢰하는 한편, 수많은 사람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체모를 채취하고 대면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용의선상에 있던 윤 씨와 이 씨에 대해서도 각각 네 차례, 두 차례에 걸쳐 체모를 채취했다.



유력 용의자를 좁혀가던 경찰은 이후 국과수로부터 사건 현장 체모의 혈액형(B형)과 형태학적 소견에 대해 회신을 받아 윤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그의 체모에 대해서만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을 의뢰했다.



이어 사건 현장의 체모와 윤 씨의 체모를 동일인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방사성동위원소 분석 결과를 토대로 윤 씨를 검거, 하루 만에 자백을 받아냈다.



사건 발생 10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반면 윤 씨와 별개로 용의선상에 올라있던 이춘재의 경우에는 두 차례의 체모 채취가 이뤄졌으나, 1차 감정 결과 '혈액형은 B형, 형태적 소견 상이함', 2차 감정 결과 '혈액형 O형 반응'이라는 답변을 받아 방사성동위원소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씨의 최종적인 혈액형은 O형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범인 검거의 분수령이 된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은 수많은 용의자 중 윤 씨에 대해서만 이뤄진 셈이다.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의 경우 당시로선 거의 없던 과학수사 기법인 데다 비용도 만만찮은 탓에 다수의 용의자에 대해 실시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10대 여자아이에 대한 성폭행 살인이라는 중대한 범죄에 윤 씨 단 1명의 체모만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범인을 특정한 것은 다소 무리가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 씨를 수사했던 경찰관들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면담에서 "국과수 감정 결과를 믿고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대상자(윤 씨)를 불러 조사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윤 씨에 대한 고문·가혹행위를 할 필요도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경찰관은 윤 씨를 검거한 공로로 포상을 받았으며, 이 중에는 윤 씨가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겁박한 경찰관이라고 지목한 '장 형사', '최 형사'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은 "당시 사건 관계자들에 대해 아직 조사하는 단계여서 '3일 밤낮으로 조사했다', '쪼그려 뛰기 등을 시켰다'는 등 윤 씨 주장에 대해서는 답하기 이르다"라고 말했다.



이어 "윤 씨에 대해선 처음엔 농기계 수리공장 근무자들과 함께 체모 채취를 했다"면서 "이후 2차로 윤 씨를 포함한 50여 명, 3차로 10여 명, 4차로 윤 씨에 대해 체모를 채취하는 식으로 좁혀가면서 유력한 용의자였던 그에 대해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을 의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충북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 씨는 그간 이뤄진 13차례의 경찰 접견과 면담에서 8차 사건을 포함해 화성 사건 모두를 자신이 저질렀다는 진술을 일관되게 하고 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1010154900736?d=y



'화성 8차' 범인 옛 동료 "나 몰래 방 드나들기 어려워"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20년 가까이 복역한 윤모 씨의 인터뷰 단독으로 전해드렸죠.


이번엔 재심이 열릴 경우 핵심 증인이 될 인물을 저희 취재팀이 만났습니다.

사건 당일 윤 씨와 같은 방에서 자고있던 직장 동료입니다.

이다해 기자입니다.


[리포트]

화성 8차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범인으로 지목된 윤 씨의 집과 1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당시 윤 씨가 일하던 농기구 수리센터 동료는 윤 씨와 함께 지내던 방 구조를 또렷이 기억했습니다.



[윤 씨의 전 직장 동료]
"이쪽이 (윤 씨가) 기거하던 방이고요. 여기가 농기계 수리하는 마당이에요. 여기가 부품 두는 데고 여기가 형님 지내시는 데고."


수리센터 뒤편에 방 2개와 부엌이 있는데 그 중 작은 방에서 자신과 윤 씨가 함께 지냈다는 겁니다.






[윤 씨의 전 직장 동료]
"한 두 평 정도. 두 명이 누우면 딱 맞을 정도라고. 움직일 정도로 큰 방은 아니라고."


방이 비좁아 남몰래 드나들기 어려웠다고 설명합니다.


[윤 씨의 전 직장 동료]
"자다가 일어나면 (윤 씨가) 다리가 불편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걸어가기 힘드니까 (밤에) 일어났다면 제 발에 걸려서 제가 깼을 겁니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1988년 9월 16일 새벽. 몸이 불편한 사람이 농번기 한 밤 중에 배회하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도 의아해 했습니다.


[윤 씨의 전 직장 동료]
"(농기구 센터는) 봄에서 가을까지 그때가 제일 바쁜 시기입니다. (윤 씨가) 나갈 만한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직장 동료는 이 사건 항소심에서도 같은 진술을 했지만 재판부는 윤 씨의 자백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최근 직장 동료를 불러 다시 조사를 했습니다.


30년 전 진술서와 비교하며 진술의 일관성을 검증한 겁니다.


[박준영 / 윤 씨 변호인]
"동료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고 당시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판단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은 직장 동료를 한 차례 더 불러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NzoCBnvrPx?f=p




참조 


화성 8차사건 '범인' 소아마비장애자 "난 무죄"..이춘재 "내가 했다" 화성8차 사건 자백

https://u21design.blog.me/221668421824


화성 8차 자백 강요했다는 장 형사..다른 살인 사건도? 스웨터 공장 살인사건의 진실

https://u21design.blog.me/221679149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