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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거꾸로 매달고 때리며 화성 사건 거짓 자백 강요" "암송하듯 자백해 수상..당시 화성 수사, 심령술사 동원도"

류. 2019. 10. 9. 08:23

"호텔 방에 가둬두고 가혹 행위"..고문수사 증언



[앵커]

화성 연쇄살인 사건 당시에 경찰이 '거짓 자백'을 강요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여러 번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한 남성이 저희 JTBC에 아주 구체적인 증언을 추가로 했습니다. 1991년 경찰이 자신을 호텔 방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때리면서 9차, 10차 사건을 자백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박민규 기자입니다.

[기자]


다른 살인사건을 저질러 수감됐다 2003년 출소한 46살 곽모 씨.


1991년 수원에서 체포됐을 때, 경찰에게 화성 사건의 자백을 강요당했다고 말했습니다.


[곽모 씨/경기 오산시 : '어차피 너는 (재판) 가면 사형을 받으니 우리(경찰)라도 좀 편하게 너 이것 갖고 가'…동탄 할머니 사건하고, 여중생 살인 사건.]


1990년과 1991년 벌어진 9·10차 사건을 자신의 범행으로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곽모 씨/경기 오산시 : 호텔에서 3일을 조사받고, 화성경찰서 가서 3일 정도 더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도 제 사건 가지고는 얘기가 없었고 다만 화성 연쇄 살인 사건, 그걸로만 조사받은 거예요.]


곽씨의 범행 장소는 평택 송탄동이었고 9차 사건은 병점리, 10차 사건은 동탄면으로 먼 곳에서 벌어졌습니다.


[곽모 씨/경기 오산시 : 송탄에서 저를 태워서 동탄까지 거리, 시간을 재더라고요. '이 시간이면 네가 와서 이렇게(범행) 할 수 있나?']


호텔 방에 가둬두고 가혹 행위를 했다고도 했습니다.


[곽모 씨/경기 오산시 : 수갑에 포승 같은 걸 묶어서 매달아 놔요, 거꾸로. 그 상태에서 매 맞는 거죠. 잠을 안 재우다 보니까 나중에는 매를 맞으면 그 순간만 눈이 떠져요.]


JTBC가 확인한 1992년 경찰청 국정감사 제출 자료입니다.


범행을 자백한 사람이 4명.


41살 홍모 씨 등 이름도 적혀 있지만 모두 거짓 자백이었습니다.


9차 사건을 거짓으로 자백한 당시 19살 윤모 군은 "형사들이 '법원에서는 부인해도 경찰에서는 시인하라고 했다'"현장검증 과정에서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1988년 조사를 받던 16살 명모 군은 고문으로 숨졌고 2년 뒤 조사를 받다 풀려난 39살 차모 씨는 스스로 열차에 몸을 던져 숨졌습니다.


당시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이 3000명,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확인된 것만 4명입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NtPPkhlAiL?f=p



[인터뷰] "암송하듯 자백해 수상..당시 화성 수사, 심령술사 동원도"


2차·7차 사건 '무죄'…'용의자' 2명 변론한 김칠준 변호사가 말하는 '화성 수사'



[...범인 접견 시작하고 물어보니 이미 뉴스에 나와서 메모했던 것들을 계속 한 글자도 안 틀리게 암송하듯이 이야기...]


[...일주일간에 걸쳐서 거의 잠을 안 재우고 반복해서 가혹행위와 자백을 강요했던 거죠. 사진첩을 주면, 무수히 주면서 거의 암송하게끔 이렇게 했었던 것이고 자백을 시작하니까 바로 경찰에 소속돼 있는 목사님 불러서 목사 앞에서 자백하게 하고 그 모습을 TV로 생생하게 녹화하게 해서 TV에 방영...]


[김칠준/변호사 : 4차, 5차 같은 경우는 아주 허무맹랑한 사건이었는데요. 미국에 계신 어느 분이 꿈 속에서 범인을 지목받았다라고 하면서.]


[김칠준/변호사 : 용의자 김종경 씨인데요. 언론에 실명이 나왔습니다마는. 그 과정에서 그 파출소 지하실로 끌고 가서 여러 가지 가혹행위를 했었고.]


그러면 그 용의자 김 씨를 데려온 것은 심령술사의 얘기를 듣고 심령술사가 그 사람을 지목했습니까?


[김칠준/변호사 :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이제 무조건 데려다가 자백을 강요한 건데 강요하는 방식이 이분을 데리고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을 끌고 갑니다. 여기서 어떻게 죽였는지 재연하라고 계속 압박을 하죠. 그리고 나서 다시 경찰서에 데려와서 그 파출소 지하실에서 거의 이제 자백을 강요하고 그러다가 이분이 결국은 자백을 하고.]


그때도 물론 가혹행위가 있었습니까?


[김칠준/변호사 : 네, 당연히 있었죠. 그러니까 이제 그때 뒤늦게서야 변호사가 달려가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니 그건 다 강박에 의한 자백이었음이 밝혀졌고 경찰도 더 이상 증거는 없으니까 결국은 석방을 하고 무혐의 처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92년도였는데 이 트라우마가 상당히 심했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당히 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93년도에 자살 시도를 한 번 합니다. 그래서 그 얘기를 가족들로부터 듣고 이건 국가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야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 해서 국가를 상대로 경찰관의 가혹수사를 이유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95년도에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 판결 받아서 그 판결을 전해 드리면서 이제 마음의 그 억울함을 푸셔라, 법적으로 다 해결됐다라고 얘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분이 그 트라우마에서 못 견디고 97년쯤에 두 번째 자살 기도죠. 93년도에 한 번 했지만 실패했었는데 결국 97년도에 그렇게 마감을 하셨고요. 그런데 비극이 여기서 끝난 게 아니고 이분을 살인자로 지목했던 그분이.]


[김칠준/변호사 : 몰랐었는데 2010년도에 그분의 김종경 씨의 아들과 부인이 저희 사무실을 찾아왔어요. 이제 벌써 십 몇 년이 지났는데. 그런데 찾아와서 하소연한 것이 뭐냐 하면 그때에 범인으로 지목했던 그 사람이 카페를 만들어서 진범은 김종경 씨다. 그리고 자살은 타살이다. 가족이 김종경 씨가 진범인 것을 알고는 타살한 것이다라는 소설 같은 이야기로 계속해서 인터넷에서 퍼뜨리고 그걸로 영화를 제작하느니 어쩌니 하면서 그 카페를 운영했었고 카페에 참여하신 분들도 상당히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2010년도에 아직도 이 사건이 안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포털사이트와 미국에 있는 사람을 상대로 해서 민사 또는 형사 고소까지 해서 법적으로 는 다 정리가 됐는데 그분이 미국에 있기 때문에 결국은 아무런 손해배상을 현실적으로 받거나 법적 처벌은 못 한 상태에서 법원의 판결만 끝나고 말았었죠. 어찌 되었든 그런 상황이 되니까 이렇게 한 번 의심받았던 사람은 법원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억울함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터넷 공간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찜찜한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가슴 아픈 사례가 계속됐던 거죠.]


출처

https://news.v.daum.net/v/Ndey3yQ6T4?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