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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은 '무기수' 청주처제성폭행살해범 이춘재

류. 2019. 9. 19. 10:11

경찰, DNA로 용의자 확인..교도소 수감 50대 남성 일치 / '청주처제살인사건' 1994년 처제 강간·살해 저질러 무기징역 / 범행 당시 20대로 추정..교도소 수감 중


18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수감 중인 A(50대) 씨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1987년 1월 5차 사건 현장인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고 있다. 


최악의 장기미제 사건 중 하나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1986년 9월 첫 사건 발생 33년 만에 범인으로 극적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지목한 화성연쇄살인사건 피해자들의 유류품에서 검출된 유전자(DNA)가 현재 강간 살인죄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춘재(56)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범행 당시 이춘재는 27세였다. 이춘재는 1994년 1월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인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5년째 수감 중이다. 당시 1, 2심 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우발 범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파기 환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재는 71세이던 노인은 물론 10대인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신체적 약자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 국민 공분을 사기도 했다.

특히, 주로 늦은 저녁이나 밤이나 새벽 시간을 노려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그는 현장에서 유유히 달아나며 장장 5년여간 꼬리를 잡히지 않고 살인을 이어갔다.

화성살인사건으로 분류된 10건의 사건을 모두 이 용의자가 저질렀는지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하지만 범행수법이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동일인 범행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경찰은 성폭행 피해를 가까스로 면한 여성과 용의자를 태운 버스운전사 등의 진술로 미뤄 범인은 20대 중반, 키 165∼170㎝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성으로 특정했다.

경찰이 공개한 용의자 몽타주에 기술된 그의 인상착의는 '(얼굴이) 갸름하고 보통체격', '코가 우뚝하고 눈매가 날카로움' , '평소 구부정한 모습'이라고 표현됐다.

이 밖에도 경찰은 일부 범행 현장에서 채취한 용의자 정액과 혈흔, 모발 등을 통해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라는 사실까지 밝혀냈으나, 결정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사건은 결국 오리무중에 빠졌다.

◆ '10명의 여성이 살해된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6년 동안 화성시 태안읍 반경 2㎞ 안에서 발생했으며, 당시 10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18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수감 중인 A(50대) 씨를 특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도


피해자는 모두 10대~70대에 이르는 여성이었으며, 피해자 대부분이 목이 졸려 살해됐고 신체 특정 부위가 크게 훼손된 특징이 있다.

경찰이 사건 해결에 수사력을 집중한 와중에도 사건이 잇따라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다.

당시 용의자를 태운 버스기사의 기억을 토대로 키 170㎝ 이하에 마른 체격, 갸름한 얼굴의 20대 중반 남성이라는 몽타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8차 사건은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와 경찰이 특정한 용의자의 음모가 일치해 유일하게 해결됐지만,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다른 사건과 관련 없는 것으로 결론 나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은 1991년 4월3일 마지막 피해자가 발생한 15년 뒤인 2006년 4월 공소시효가 끝났다.

경찰은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연인원 205만여 명을 동원해 2만1280명을 수사했다. 4만116명의 지문을 대조했고 180명을 대상으로 모발 감정도 했다. 하지만 단독범의 소행인지, 다수 범인에 의한 개별 사건인지조차 밝히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7, 9, 10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의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경찰은 공사시효가 끝난 뒤에도 DNA 기술 개발이 이뤄질 때마다 증거를 재차 대조하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올해 주요 미제 사건 수사 체제를 구축하고 수사를 하던 중 7월 화성 사건 증거물 일부와 DNA가 같은 인물이 나왔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통보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50대 유력 용의자를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9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유력용의자를 특정하게 된 경위등 자세한 내용을 밝히기로 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0919081714011


'화성연쇄살인사건' 이춘재, 처제도.. '스타킹 묶어 시신 유기'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가 처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확인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을 통해 경찰이 특정한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는 현재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56살 이춘재다.

용의자 이춘재는 마지막 화성 연쇄살인 사건인 10차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뒤인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SBS와 통화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는 지난 1994년 청주 처제 살인사건 범인이 맞다”고 밝혔다.

청주처제살인사건 당시 수사 관계자는 한국일보를 통해 1994년 1월 이춘재(당시 30대)가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자신의 집으로 처제(20)를 불러 주스에 수면제를 타 먹인 뒤 성폭행했다. 처제가 깨어나 울자 망치로 머리를 때리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살해 후 철물점 야적장에다 시신을 유기했다”며 “이춘재는 1,2심에서 사형선고 받았다가 파기환송심에서 최종 무기징역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처제 살해 수법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닮은 점이 많았다. 특히 살해한 처제의 시신은 여성용 스타킹으로 묶여 싸여져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처제 살인사건의 범행 동기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춘재 경제능력이 없어 부부간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나기 한달 전쯤 부인이 집을 나갔다. 혼자 있던 이춘재가 처제에게 빵 굽는 토스터기 줄 테니 놀러 오라고 꼬드겨서 집으로 부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이춘재는 모두 10차례의 화성사건 가운데 9차 살인사건의 피해여성의 속옷에서 최근 검출된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다른 5차, 7차 사건 피해자의 유류품 중에서도 이춘재와 일치하는 DNA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오늘(19일) 오전 9시 30분 경기남부청 2부장이 주재하는 브리핑을 진행할 예정이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0919072735205


"화성 연쇄살인 용의자, 청주서 처제 살해 때도 잔혹하고 치밀"


당시 사건 담당 청주 서부경찰서 형사계 근무 퇴직 경찰관 밝혀

(청주=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경기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A(56)씨는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했을 때도 잔혹하고 치밀했다고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은 기억했다.

충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 근무하다가 지난 6월 정년퇴직한 이모(62) 전 경위는 1994년 청주 처제 강간·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청주 서부경찰서 형사계 감식 담당이었다.

수사팀의 막내였던 이 전 경위는 A씨가 처제를 성폭행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경위를 비교적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 A씨가 화성 사건과 연관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범행 수법이 굉장히 잔혹하고 치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1994년 1월 A씨는 청주시 흥덕구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처제 이모 씨(당시 20세)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인 뒤 성폭행했다.

이후 둔기로 머리를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다음 머리를 검은 비닐봉지로 싸고 다시 한번 청바지로 뒤집어씌웠다.

이 전 경위는 "시신을 비닐봉지, 청바지, 쿠션 커버 등 여러 겹을 싸서 집에서 1㎞가량 떨어진 철물점 야적장에 버린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범행을 치밀하게 은폐했기 때문에 증거를 찾는데도 며칠 밤을 새우며 사건 현장 등을 이 잡듯 뒤지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사건 당일 새벽 A씨의 집에서 물소리가 났다"는 제보를 듣게 됐다.

이 경위는 A씨의 집 욕실 정밀 감식을 벌여 세탁기 받침대에서 피해자의 DNA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A씨가 범행 후 피해자의 혈흔을 씻는 과정에서 미량의 혈액이 남았던 것이다.

이는 충북에서 처음으로 DNA가 범죄 증거로 채택된 사례였다.

이후 부검에서 피해자의 혈액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이 경위는 "과학수사 초창기였던 당시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해서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법원은 A씨에 대한 1심에서 "범행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진 데다 뉘우침이 없어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사형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에서 "성폭행 이후 살해까지 계획적으로 이뤄졌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파기 환송됐다.

A씨는 현재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징역수로 복역 중이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0919100715783


화성 연쇄살인 동일범 지목된 청주 처제 살인 사건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특정된 A씨가 1994년 청주에서 발생한 처제 살인사건의 범인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해당 사건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시 수사에 참여한 이모(60)씨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들어봤다. 이씨는 지난 6월 충북 한 경찰서에서 정년 퇴직했다.

-2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사건을 기억하는지.

“당시 청주서부경찰서 형사계 감식 담당자로 수사에 참여했다. 아주 또렷하지는 않지만 시신 유기 장소와 방식이 특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화성연쇄 살인범과 수법이 비슷하다는 말이 돌았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사건 개요는.

“1994년 1월 A(당시 30대)가 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자신의 집으로 처제(20)를 불러 주스에 수면제를 타 먹인 뒤 성폭행했다. 처제가 깨어나 울자 망치로 머리를 때리고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아들 유모차에 실어 1㎞떨어진 철물점 야적장에다 버렸다. 다음 날인가 철물점 주인이 물건을 덮어놓는 파란색 천막 안에서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A는 1,2심에서 사형선고 받았다가 파기환송심에서 최종 무기징역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발견 당시 시신은.

어린이나 여성들이 잠잘 때 안고 자는 대형 쿠션 안에 시신이 들어있었다. 검은 비닐로 얼굴을 싸고 그 위에 청바지를 뒤집어 씌워놓았던 것 같다. 피가 안 나도록 하려고 한 것 같았다. 당시 시신에서 질액을 채취해 국과수로 보냈다.”

-범행 동기는 밝혀졌나.

“A의 경제능력이 없어 부부간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나기 한달 전쯤 부인이 집을 나갔다. 혼자 있던 이씨가 처제에게 빵 굽는 토스터기 줄 테니 놀러 오라고 꼬드겨서 집으로 부른 것으로 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

“사건 직후 곧바로 유력 용의자로 A를 붙잡았다. 그런데 처음과 달리 A가 범행 일체를 부인하기 시작해 검찰 공소 유지에 제동이 걸렸다. 그래서 범행 입증할 단서를 찾으러 다시 현장탐문을 하다가 인근 주민으로부터 사건 당일 A집에서 새벽까지 물소리가 났다는 얘길 듣고 A집 욕실을 다시 찾았다. 정밀 조사를 하다가 세탁기를 고정시키기 위해 받침대 밑에 고여놓은 장판지 조각에서 희미한 혈흔을 발견했다. 거기서 피해자 유전자를 검출하는데 성공해 혐의 입증 자료로 썼다. 당시 유전자 검사가 활성화하지 않은 시기였는데, 충북에서 DNA를 결정적 증거로 채택한 첫 사례였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0919044241219?d=y


창고속 희생자 속옷 다시 꺼내 DNA 검출.. 국과수 DB와 일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33년 만에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유전자(DNA) 분석 기법이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한 덕이었다. 이춘재의 DNA는 현재까지 화성 연쇄살인 사건 10건 중 1건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찰은 나머지 사건의 증거물도 다시 감정해 추가 범행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 올 7월 다시 빛을 본 증거물

경기 화성경찰서 창고에 잠들어 있던 증거물이 다시 빛을 본 것은 올 7월 중순이다. 화성 사건을 비롯한 장기미제 사건을 수사해온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최근 DNA 분석 기술의 발달로 사건이 발생한 지 십수 년이 지난 후에 재감정한 증거물에서 용의자의 DNA가 검출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리고 화성 사건의 증거물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총 10건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1990년 11월 15일 화성시 병점동(당시 태안읍 병점5리) 야산에서 발생한 9차 사건의 희생자인 김모 양(13)의 속옷 등 유류품도 대상이었다.

김 양의 속옷에서 검출된 남성의 DNA를 국과수의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한 결과 현재 강간 살인죄로 무기 복역 중인 이춘재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양의 다른 유류품에서도 이춘재의 것과 일치하는 DNA가 검출됐다.

공교롭게도 국내에 DNA 분석기법이 처음 도입된 계기는 화성 사건이었다. 총 10건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 중 1988년 9월 16일 박모 양(13)이 살해되는 8차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수사 사상 처음으로 음모의 방사성동위원소를 대조하는 분석법을 적용했고, 9차 사건부터 피해자의 시신에서 검출된 정액 DNA를 일본에 보내 감식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DNA 수사 기법을 처음 도입했다.

다만 당시엔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DNA를 이미 경찰의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의 것과 1 대 1로 대조하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범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실제로 화성 사건으로 DNA 분석 대상에 오른 용의자만 570명, 모발 감정 대상은 180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엔 기술 발전으로 더 적은 양의 검체에서도 2배 이상 정밀한 유전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됐고,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대상도 크게 증가했다. 경찰과 국과수가 이춘재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경찰은 1991년 4월 3일 화성시 반송동(당시 동탄면 반송리)에서 일어난 마지막 10번째 사건의 희생자 권모 씨(69·여)의 유류품을 비롯해 나머지 증거품도 재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결과에 따라선 추가 범행이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

○ 화성 사건 기록 ‘영구 보존’ 후 계속 추적

용의자를 찾아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2016년 1월 출범했다. 2015년 7월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각 지방청에 생겨난 미제전담팀 중 하나다. 미제전담팀은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사건의 기록을 일선 경찰서로부터 넘겨받아 직접 수사한다. 화성 사건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의 수사 대상 가운데 중요도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1991년 4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기록이 15년 후까지 남아 미제수사팀에 전달된 것은 경찰이 해당 기록의 영구 보존을 결정한 덕이다. 경찰은 1986년 12월 14일 이모 씨(23·여)가 숨지는 4차 사건이 일어나자 화성에서 일어난 일련의 살인사건을 연쇄살인으로 규정하고 수사를 확대했다. 이후 연인원 205만 명의 경찰이 투입돼 수사와 수색을 벌였다. 용의자와 참고인 명단에 오른 사람만 2만1280명이었다.

하지만 모방 범죄였던 8차 사건의 범인 윤모 씨(52)가 1989년 7월 검거된 것을 제외하곤 성과가 없었고, 결국 10차 사건의 공소시효마저 2006년 4월 2일로 만료됐다. 경찰은 공소시효 완성 1년이 지나면 기록을 폐기하는 다른 사건과 달리 화성 사건의 기록을 영구 보존하기로 했고, 오산경찰서의 강력팀 한 개를 담당 수사팀으로 남겨 가끔씩 들어오는 제보를 확인해왔다. 화성 사건 제보를 받아 수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만 1495명을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0919030253372



1994. 01. 17 처제 성폭행, 살해유기 30대 영장


입력 1994.01.17. 18:32

청주(淸州) 서부(西部)경찰서는 17일 처제를 성폭행한뒤 살해한 李春在씨[31.청주(淸州)시 복대(福臺)동 2122]에 대해 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李씨는 지난 13일 오후 7시께 집에 놀러 온 처제 李모씨[20.회사원.청주(淸州)시 수의(守儀)동]를 성폭행한뒤 둔기로 머리를 때려 숨지게 한 다음 오토바이를 이용,집에서 1㎞ 정도 떨어진 유한철물점 차고안에 사체를 버린 혐의다.

李씨는 경찰 조사에서 "지난해 12월18일 가정불화로 아내가 가출해 혼자 지내는데 처제가 갑자기 찾아와 마구 비난하자 홧김에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춘재 청주집 주소

출처

https://news.v.daum.net/v/19940117183200479




1994.05.06 처제 성폭행 살해범 사형(死刑) 선고


(청주(淸州)=연합(聯合)) 청주(淸州)지법 형사합의부(재판장 申暎澈부장판사)는 6일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李춘재피고인(31.청주(淸州)시 福臺동)에게 살인죄 등을 적용,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자신을 믿고 따른 처제를 성폭행한뒤 살해하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사체를 유기하는 등 죄질이 불량할뿐 아니라 범행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진 점과 뉘우침이 없는 점 등을 들어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면서 이같이 선고했다.



李피고인은 지난 1월13일 오후 8시께 자신의 집에서 처제 李모양(20.C대 여직원)을 성폭행한뒤 둔기로 李양의 머리를 때려 살해한후 사체를 집근처 주차장에 버린 혐의로 구속기소돼 사형이 구형됐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19940506171000282



1995-01-17아내 家出 보복 처제 살해범 大法, 사형선고 파기

"계획적 범행 직접 증거 없어"



대법원 형사 2부(주심 朴駿緖 대법관)는 16일 가출한 처에 대한 보복으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1, 2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李모 피고인(32)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 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극형으로,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적용돼야 한다』면서 『피고인의 범죄가 반인륜적 행위임에는 틀림없으나 성폭행 이후의 살해까지 계획적으로 이뤄졌는지가 불분명하므로 충분한 심리로 의문점을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원심은 피고인이 처제에게 수면제를 먹인 점으로 미뤄 계획적인 범행으로 인정했으나 살인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볼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李피고인은 93년 12월 부인이 두 살배기 아들을 남겨두고 가출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해 1월 13일 충북 청주시 복대 2동 자신의 집으로 처제(당시 19세)를 불러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인 뒤 성폭행하고 범행을 감추기 위해 둔기로 머리를 때려 살해한 뒤 인근 차고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었다.



출처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19950117000172




경찰 "화성살인 용의자 DNA 3차례 사건서 검출..혐의 전면부인"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0919104149140?d=y


표창원 "아직도 안 믿겨. 꿈 같은 느낌".. 기소 어려워도 수사 필요


표창원 의원, 1990~1991년 화성 근무
"꿈같은 사건. 아직도 안믿겨".. 기소 어렵지만 수사 필요성 확인한 사안

표창원 국회의원. 표 의원은 1990년~1991년 화성에서 경찰로 근무했었다. 그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열패감과 자괴감을 느꼈던 사건”이라고 당시 사건을 기억했다.


1980년~199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 당시 경찰 신분으로 수사에 참여했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화성경찰서 기동대 소대장 등으로 1990년대 경찰에 근무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열패감과 자괴감을 느꼈었던 사건’이라고 술회했다.

표 의원은 19일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아직도 믿기지는 않는다. DNA증거 때문에 개가를 올릴수 있다는 사실이 벅차지만, 현실감이 아직 오지 않고 있다”며 “한으로 남았던 사건이다. 저뿐만 아니라 수사에 참여했던 모든 경찰관들이 그랬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무리한 수사를 하다가 형사 처벌된 경찰도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분도 있었다. 피해자 중에는 유족 분들도 있고 경찰도 있다”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꿈같은 느낌이다. 차분하게, 한달 정도, 조사가 필요하니까. 조금더 기다려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연인원 추산 경찰력이 200만명이 투입됐던 희대의 사건이다. 경찰 역사에는 ‘흑역사’로 기록돼 있다. 역대 가장 많은 경찰을 투입했지만 결국 범인을 잡는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쇄살인은 1991년 4월에 일어났다. 이후 범인은 더이상의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잠적했다. 표 의원은 ‘열패감과 자괴감을 느꼈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표 의원은 “화성에서 근무했을 때가 1990년 7월부터 1991년 7월까지였다. 부임 첫해에는 정경대 소대장을했고, 이후엔 화성경찰서 기동대 소대장으로 있었다”며 “평상시 임무는 연쇄살인사건 현장 보존과 지역주민 여성분들의 안전귀가 그리고 검문 검색을 담당했다”며 “수사진과 같이 논의를 했었다. 특히 9차사건 발생당시에 제가 그곳에 근무했었기 때문에, 현장보존과 증거 보존 작업을 했었다. 검문검색 과정에는 지역주민들이 너무 오랜동안 (경찰 검문에) 시달리니까, 대원과 경찰들을 보면 거친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표 의원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박해일 역할’을 했었던 윤모 용의자가 있었다. 그 친구를 검문검색하던중에 그의 부모님이 찾아와서 연락을 받고는 없어졌다”며 “형사진이 여관에서 (그를 다시 잡아) 조사를 했고 (본인이 범인이라는) 자백을 받고 범인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검증과정에서 시신의 위치를 못찾았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소회에 대해 “가슴에 안고 있었던 사건이다. 수사에 도움도 주지 못했고, 범인 꼬리도 못잡았고, 대대적인 경찰인력이 (살인을) 막아내지 못했고 또 발생했던 사안이다. 열패감과 자괴감 느꼈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표 의원은 화성 사건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원인 중 하나에 화성연쇄살인사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화성 사건이 본인에게 준 열패감 때문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설명이다. 표의원은 “1986년 화성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영국에서는 최초로 DNA를 개인식별에 적용할수 있다고 하는 기법이 데프릭스 박사에 의해서 공개됐다”며 “화성 사건 이후 데프릭스 박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화성 사건에 DNA 기법을 도입하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이번에 화성 사건 범인을 특정한 것 역시 당시 증거물을 잘 보관했기 때문에 30년 이후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화성 사건 당시에는 유전자 증폭기술과 장비 등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대신에 현장 수거 증거물들을 잘 보관하고 있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됐다. 강력 사건에 대한 증거물은 영구 보존 해야 된다. 공소시효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15년이 지나면, 기소 못하는 사건이다. 화성 사건도 다행스럽게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대조할수 있는 증거물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표 의원은 “우리나라는 잘못된 수사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수사는 기소의 전단계라는 개념이다. ‘수사는 기소의 부속작용’이라고 생각해왔다. 기소를 못할바엔 아예 수사를 하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이 관행처럼 자리잡고 있었고 그런 것을 뒷받침하는 학설도 있었다”며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기소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의심 받는 사람의 누명 벗겨주는 것이 수사 목적이 될 수도 있다.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고, 유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 방안 찾는 것도 수사의 목적이 될 수 있다. 지역 사회, 국가 사회를 위하고 범죄 사건의 재발을 막으며 피해를 회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수사”라고 강조했다.

표 의원은 “공소 시효 때문에 기소를 못하는 것은 수사 목적 중 단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 내고, 피해자들의 원한 달랠 수 있다. 그래서 유가족의 충격과 아픔 덜어주는 것도 수사의 목적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저야 무게가 덜하긴 했지만, 피해자와 현장 보호에 나서셨던 분들은,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아닌 분이 없었다. 포천 여중생 사건도 담당 수사관이 자살했다”며 “(경찰이) 강인하기도 하고.실제로 강인하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범인을 못잡는 안타까움 이런 감정 상태들은 장기간 내재하게 된다. 분노 감정을 해소 못해 술에 의존하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0919090253191


"가석방 염두에 뒀나?" 화성사건 용의자, 교도소서 봉사원 활동


1급 모범수들 중 나이와 인성 모범되는 수형자 봉사원으로 지정
용의자 이씨, 공장 반장으로 불리는 봉사원 활동하며 다른 수형자 작업 관리
수형 점수 관리 통한 가석방 염두에 둔 듯
무기수인 이씨 수감 기간 20년 지난 2015년부터 가석방 가능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56)씨는 부산교도소 수감 기간 이른바 공장 반장으로 불리는 봉사원으로도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봉사원은 나이와 인성 등을 고려해 다른 수형자들에게 모범이 되는 수형자가 맡게되는데, 일정 부분의 권한과 함께 수형 점수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1급 모범수로 분류된 이씨가 봉사원 등의 활동을 하며 쌓은 수형 점수로 가석방까지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산교도소에 따르면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특정된 이씨는 지난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다음해 10월 23일부터 현재까지 24년 동안 부산교도소에 수감돼있다.

부산교도소 측에 따르면 이씨는 교도소 수감 기간동안 이렇다 할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징벌이나 조사를 한 차례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모두 4등급으로 나뉘는 수형자 분류 등급 중 이씨는 일찌감치 1급 모범수로 분류됐다.

이씨는 한 발 더 나아가 모범수들 중 교정 성적과 나이, 인성 등을 감안해 지정되는 봉사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른바 공장 반장으로 불리는 봉사원은 공장 작업 시 담당 교도관을 보조해 다른 수형자들을 관리하는 역할이다.

봉사원 1명 당 50~100명의 수형자의 작업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봉사원은 가석방에 영향을 미치는 수형 점수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이씨는 관련법 상 수감 기간이 20년을 넘어선 지난 2015년 이후 가석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1급 모범수인 이씨가 봉사원 등의 활동을 하며 쌓은 수형 점수 등으로 가석방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씨 역시 이 같은 수형 점수를 토대로 한 가석방을 염두에 두고 봉사원 등의 활동에 나섰을 것이라는 말이 교도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부산교도소 관계자는 "1급 모범수들 중 공장 반장을 선정한다"며 "이씨가 공장 반장으로 활동했던 것은 맞다"고 말했다.

한편,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경기도 화성시(당시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부녀자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최악의 사건이다.

경찰이 연인원 200만명을 투입했지만 끝내 검거에 실패하면서 '개구리소년 실종사건', '이형호군 유괴사건'과 함께 국내 3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지난 2006년 공소시효가 완료됐지만 유가족 측 요구와 현지 주민들의 불안감 등으로 재수사 요구가 이어져 왔다.

경찰은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 관련 10건의 사건 가운데 3건 피해자 유류품에서 채취된 DNA와 이씨의 DNA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0919151801343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청주 처제강간살인 범행과 수법 유사(종합)


당시 19세 처제 집으로 불러 성폭행 후 살해
재판부 "화나면 부모도 말리지 못하는 성격"
1·2심 사형 선고..대법원 파기환송 '무기징역'

1980년대 후반 전국을 뒤흔들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1994년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처제 강간살인범인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범행 수법 또한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화성 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로 특정한 이모(56)씨는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현재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1991년 10차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3년 뒤 청주에서 범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1994년 1월13일 "토스트기를 가져가라"며 청주시 복대동 자신의 집으로 처제(당시 19세)를 불러 수면제를 몰래 먹인 뒤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잠에서 깨어난 처제가 자신을 원망하자 범행이 알려질 것이 두려워 둔기로 처제의 머리를 4차례 내려친 뒤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고 집에서 880m 떨어진 곳에 사체를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유사한 수법인 스타킹과 끈, 속옷 등으로 숨진 처제의 몸통을 묶어 유기했다.

이씨는 자신의 아내가 가출한 것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내성적이나 한 번 화가 나면 부모도 말리지 못할 정도의 성격 소유자"라며 "자신의 아들과 아내에 대해서도 수차례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했다"고 설명했다.

1·2심 재판부는 살인, 강간,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성폭행 이후 살해까지 계획적으로 이뤄졌는지 불분명하다"며 파기 환송했다.

대전고법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씨가 이 사건 전에 범행을 한 것으로 보이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6년 동안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반경 2㎞ 안에서 발생, 10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15년)는 2006년 4월2일 끝나 처벌은 불가능하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190919114754201




1994년 청주 처제 성폭행 살인사건 판결문

https://u21design.blog.me/221664974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