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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열사 옆에 잠든 노회찬.. "고단한 여정이었다"

류. 2018. 7. 30. 14:33

고 노회찬 원내대표 묻힌 모란공원,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마지막 배웅

▲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에서 정의당 지도부와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사람들의 옷이 땀으로 젖었다. 그들의 가슴은 눈물로 젖었다. 그들은 반주 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습기를 머금은 노랫말은 우렁차게 이어지지 못했다. 끅끅거리는 흐느낌과 뒤섞였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느라 차마 부르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팔뚝만 흔드는 이도 있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결국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무너지는 이도 있었다. 노회찬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당부를 남기고 앞서서 가버렸다. 27일 오후 4시께,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모인 1000여 명의 사람들은 노회찬을 따르기 위해 남은 산 자들이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떠나는 마지막 길은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

동지에게 바치는 <임을 위한 행진곡>

국회에서 영결식이 끝난 후, 고인의 영정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머물던 의원실과 정의당 당사를 방문했다. 고 노회찬 의원의 부인인 김지선씨는 노회찬 의원의 명패를 어루만지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영정이 당사를 잠시 둘러볼 때, 한쪽에서는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렸다. 정의당 당원 가입 그리고 후원 문의가 쏟아졌다. 고 노회찬 의원이 가는 길을 위로하는 조종 소리였다.

▲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이 진행되고 있다.


"열사들이여, 우리 회찬이의 넋을 받아주시옵소서."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묻힌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으로 요령잡이(상여가 나갈 때 요령을 들고 가는 사람)가 들어왔다. 그 뒤에는 삼베옷을 입은 이들이 큰 깃발들을 들고 따라왔다. 흰 깃발에는 검은 글씨로 "힘들고 어려운 이들의 벗", "멋을 아는 따뜻한 달변가"와 같은 말들이 박혀 있었다. "우리 모두가 노회찬이 되자", "우리 모두 당신에게 빚을 졌습니다", "당신의 큰 뜻을 이어받아 이루겠습니다"와 같은 다짐들도 눈에 띄었다. 화장을 마친 고인의 시신도 함께였다.

수많은 사람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권영길, 단병호 등 민주노동당 창당의 주역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정미 당대표를 포함해 검은 양복을 입은 당직자들, 노란 국화를 든 자원봉사자들, 붉은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 생활한복을 입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줄지어 그 뒤를 따라왔다.

▲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에서 동생 노회건씨가 유골함을 안치하고 있다.

▲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에서 부인 김지선씨가 절을 하며 오열하고 있다.


간소한 하관식이 진행됐다. 재로 돌아간 고인의 유골함이 내려갔다. 곡소리를 선창하던 요령잡이가 고인을 위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흐느끼던 사람들의 낮은 합창이 이어졌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투쟁"을 외치는 이도 있었다. 상복을 입은 유가족들이 고인에게 술을 올리고, 함께 절을 했다. 장례위원들도 이어 술잔을 따르고 두 번 절했다. 그리고 다 같이, 반주에 맞춰 한 번 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지에게 두 번 절하듯이.

"이제 편히 쉬십시오"

나경채 공동장례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앞서 세상을 떠난 이재영, 오재영, 박은지 등 진보정당의 인재들 이름을 나열한 뒤 "이 작은 정당이나마 지키려면, 이렇게 생을 갈아 넣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다"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나 노회찬은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나아가라'고 이야기하셨지만, 아마도 노회찬 대표를 잃은 우리는 좌충우돌할 것이다. 회의할 것이다"라며 "노회찬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당당히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하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다만, 따뜻한 복지국가 만들자던 노회찬의 꿈은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간절함에 책임 한 조각씩 더 얹어서 함께 갔으면 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그는 "우리들의 영웅, 노회찬 대표님! 안녕히 가십시오!"라며 추도사를 마쳤다.

▲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에서 정의당 천호선 전 대표가 추모사를 하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천호선 공동장례위원장이 이어 앞으로 나섰다. 그는 고인을 "가장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던 정치인"이라며 "당신은 당신의 방식대로 좋은 세상을 향하여 우리를 더 깊고, 더 넓게 이끌어주셨다"고 평했다. 그는 고 노회찬 의원이 "나쁜 일이 있을 때 항상 먼저 나서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먼저 뒷걸음치며 양보하셨다. 분노하실 때조차 겸손했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고백하건대, 솔직히 당신처럼 살 자신, 당신처럼 정치할 자신, 많은 사람이 갖고 있지 않다"라며 "그러나 그렇게 하려 한다. 그렇게 하겠다. 정의당도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너무 고단한 여정이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고인이 살아생전 지어 부르던 <소연가>가 흘러나왔다. 삼국유사 속 설화를 바탕으로 서정주 시인이 지은 시구에서 따와 가사를 만들고, 고인이 음을 붙인 노래이다.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라며 고인의 노래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타고 흘러나왔다. "서른 해만 더 함께 살아볼거나"에서 옆의 조문객은 "서른 해만 더 함께 살지, 왜..."라며 슬픔을 토해냈다.

▲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에서 추모객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  2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고 노회찬 의원의 하관식에서 추모객 사이로 영정이 보이고 있다.



1000여 명의 사람들이 헌화를 위해 묘역 입구까지 줄지어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고인의 무덤 위를 하얗고 노란 꽃들이 가득 뒤덮었다. 노회찬 의원이 잠든 그 자리 옆에는 그가 10년 넘게 신었던 구두 대신, 그가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한 새 구두가 가지런히 놓였다. 그의 구두처럼, 노회찬은 오랫동안 노동해방, 참세상, 진보정치의 꿈을 품었다. 그의 영전에 바쳐진 새 구두는, 그가 두고 간 꿈을 이어받을 산 자들의 것이었다.

출처https://news.v.daum.net/v/20180727191800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