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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씨 일가와 박 대통령, 사교·재산으로 엮인 갑을관계"

류. 2016. 12. 8. 01:01
"최씨 일가와 박 대통령, 사교·재산으로 엮인 갑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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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미디어다음] 정치일반 
글쓴이 : 한겨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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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박근혜 검증’ 주도한 정두언 인터뷰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이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뒷북이긴 하다. 그러나 거슬러올라가면, 박근혜-최순실 이 두 사람이 이처럼 온 나라를 암흑으로 집어삼키기 훨씬 이전에 그 싹을 자를 기회가 있었다. 1980년대 영남대·육영재단·정수장학회 등에서 각종 비리 문제가 터져도 마땅한 법적 책임을 피해갔던 박근혜. “모른다”, “관계없다”며 완강한 부인으로 여론의 화살을 피했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이 펼쳐졌던 2007년. 그는 처음으로 ‘검증’의 무대에 올랐다. 1997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지지선언을 하며 ‘박정희의 딸’로서 화려하게 정계에 등장한 그가 여의도 생활을 한 지 꼭 10년만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본선보다 더 치열한 경선을 치르고 있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 쪽보다도 박근혜 캠프가 더 혹독하게 이명박 후보를 검증했다. 이명박 캠프도 뒤질세라 박 후보의 ‘과거사 자료’와 제보를 수집·공개하며 열을 올렸다. 도곡동땅, 비비케이(BBK) 실소유주 논란 등 이명박 후보의 의혹 보따리가 워낙 크고 무거웠기에, 상대적으로 박 후보에겐 검증의 칼날이 무딘 편이었다. 이명박 캠프에선 자신들이 상대방에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선 언론이 너무 관심을 안 가져준다며 섭섭함을 토론하곤 했다.

이명박 캠프에서 박 후보와 최태민 일가와의 관계를 캐며 검증을 지휘했던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한나라당 경선을 2주일 앞둔 2007년 8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태민과 박근혜 관계를 낱낱이 드러내면, 박근혜 대표를 많이 좋아했던 많은 분들이 밥도 못 먹을 것”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 9년만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검찰이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범행에 공모했다는 발표를 내놓은 20일, 그의 속내를 들어봤다.

후손들이 ‘박근혜-최순실 드라마’ 본다면…

-요즘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연재 중인 ‘정두언 회고록’의 가제가 ‘최악의 정치, 최고의 정치’인데 지금 펼쳐지고 있는 것이 ‘최악의 정치’ 아닌가?

“지금보다 최악의 정치가 있다면 그건 나라 망하는 거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고려시대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을 놓고 ‘조선역사 1천년의 제1대 사건’이라고 했는데 내 생각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조선역사 1천년의 1대 사건’이 될 거다. 앞으로 100년, 500년, 1000년, 2000년 후까지도 연속극, 소설, 영화로 계속 나올 거다. 우리는 지금 여기 살고 있어서 못 느끼겠지만 후손들에겐 그만큼 엄청난 사건이 될 거다. 물론, 그걸 놓고 내기는 못하지. 어차피 우리는 다 죽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 후손들이 그 드라마를 볼 때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을까? 그건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본다. ”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박 후보를 검증하면서 이런 일을 미리 예견했을텐데 더 철저히 못했다는 아쉬움 있지 않나?

“이명박 후보는 앞서가는 후보여서 박 캠프만큼 네거티브를 심하게 하진 않았다. 그러나 방어는 해야 했기 때문에 철저한 자료 조사와 연구를 했다. 박 후보가 하도 우겨서 사상 초유로 같은 당 안에서 후보 검증 청문회까지 했다(2007년 7월19일). 박 후보 쪽에선 우리 후보에 대한 갖가지 언론 보도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그를 인용해서 공격할 수 있었지만, 그때 언론에선 박근혜 의혹을 별로 다루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위험했지만 언론에 박근혜 의혹이 보도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도 했다.

최태민 의붓아들 조순제
“10·26 이후 뭉칫돈 들어와”
박정희 재산 관리했을 가능성

“언니를 최태민에게서 떼어주세요”
노태우에게 보낸 박근령 편지
중정·합수부 수사자료 나왔지만
언론 무관심으로 검증 기회 놓쳐

2007년 6월 17일과 20일 ‘김해호’라는 이가 박근혜의 육영재단 비리와 최태민, 최순실 부녀의 철저한 검증을 한나라당 검증위원회에 바란다’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부동산 등 최순실과 자매들의 수많은 자산은 최태민이 빼돌린 각종 기금 및 공금이라는 내용이었다. 김 목사는 최순실의 고소로 수사를 받고 구속됐다. 김 목사가 어떻게 기자회견 자료를 입수했는지 밝히는 수사 과정에서 이명박 캠프가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 캠프는 ‘공작정치’라고 대대적인 공세를 벌였다.

-하지만 김 목사의 기자회견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최태민 일가와 관련된 검증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오래전 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었고, 과거 자료들을 확보하기도 힘들었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도 진술하기를 두려워했다. 당시 우리는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와 전두환의 합동수사본부에서 작성한 수사자료, 1990년대 박근령·박지만이 노태우 대통령한테 ‘우리 언니를 최태민으로부터 구해주세요’라고 보낸 편지 등을 입수해 언론에 공개했는데 <오마이뉴스> 빼곤 거의 싣지 않았다. 최태민의 의붓아들(최순실의 의붓오빠)인 조순제씨가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된다’고 기자회견 했는데도 언론에선 단신으로라도 처리하지 않았다. 참 미스테리한 일이다. 그러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최근 ‘조순제 녹취록’이 일부 공개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박근혜, 육영수 생전에도 최태민 만나 ‘최면술 치료’받아

“조순제씨는 한나라당 검증청문회에서 박 후보가 ‘조순제는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밝힌 데 대해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조순제는 최태민과 박근혜 사이에서 일했던, 정윤회의 ‘전신’ 같은 사람으로 박 후보가 절대 모를 리 없는 사람이었다. 나도 청문회에서 발언 보면서 기절할 뻔했다. 당당하면 인정을 해야지 왜 저리 부인할까 싶었다. 그걸 보고 매우 충격받은 조씨가 우리 캠프에 찾아와 ‘이런 사람은 절대 대통령이 되면 안된다’고 했다. (최태민 사후 최순실에게 밀려난) 개인적 박탈감일 수도 있지만 나라에 대한 충정도 있었던 것 같았다. 전직 원로 언론인이 그와 인터뷰를 해서 녹취록을 작성했다. 정작 나는 그 녹취록을 지금 갖고 있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박정희 대통령 사후 최태민 쪽으로 ‘뭉칫돈’이 갑자기 흘러들어왔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10·26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환으로부터 아버지의 통치자금이라며 금고에 있던 9억원 중 6억원을 건넸다는 것만 알고 있고, 박정희-육영수 부부의 재산은 0원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18년 집권을 했는데 재산 액수가 적겠나. 조씨의 뭉칫돈 발언이 그 재산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 추론이 사실이라면 최태민에게 그 재산은 명의신탁이 된 거다. 그렇게 해서 갑을관계가 거꾸로 형성된 것 같다. 최태민에 대한 사교적 믿음, 재산으로 엮인 갑을관계, 이런 게 꽁꽁 묶여 40년간 박 대통령이 최씨 일가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또 주목할 만한 부분은, 육영수 여사 생전에도 최태민이 박 대통령을 만났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공부를 소홀히하자 최태민이 청와대에 들어와 박 대통령을 ‘최면술’로 ‘치료’ 했다고 한다. 이후 육영수 여사 사후 박 대통령이 식음전폐하고 있자 박정희 대통령이 몹시 걱정스러워했다. 이때 최태민이 청와대 요로로 청탁을 넣어 큰 영애를 만났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방에서 최태민을 만난 지 20분만에 활짝 웃는 얼굴로 나왔다고 한다.”

-당시 조순제 녹취록 전문은 왜 공개가 안됐을까?

“(박 대통령과 최태민 간에) 사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얘기 안하는 게 맞다. 말하는 사람도 입밖으로 꺼내는 순간 이상해져버린다. 상상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박근혜는 사리분별 못하는 ‘철없는 사람’

-박 대통령과 최씨 일가는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나?

“여러 증언과 자료를 보면, 박 대통령은 최태민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있었다. 최태민 비난만 하면 ‘천벌을 받을 사람들’이란 거친 비난이 돌아왔다. 누가 봐도 최씨 일가는 천하고 못되고 불순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철썩같이 믿으면서 이용당하는 것조차 모른다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철이 없는 거다. 일국의 지도자가 철이 없어서 되겠나. 철이 든다는 건 여러가지 의미 있지만 사람 구분 못하고 사리분별을 못한다는 거다. 지난번에 문체부 국·과장 놓고 ‘나쁜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한쪽 말만 듣고 이에 동조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 ’이라고 몰아갔다. 그렇게 국정운영하면 결과는 뻔한 거다. ”

-박 대통령을 보면서 뭐가 그리 위험하다고 느꼈나?

“굉장히 페쇄적이고 권위적이다. 뭐든지 신비에 싸여있다. (미국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은 결혼하기 전 연애한 거까지 다 나오는데 박 대통령 쪽은 너무 비밀에 싸여있다. 삼성동 집도 나중에 공개됐지만 시시티브이(CCTV)가 너무 많다. 폐쇄성은 정치인으로서 비정상적인 거다. ‘요만큼’도 싫은 소리 들으려고 하는다면, 어떻게 해서 좋은 지도자가 되나. 반대 의견을 허용하고 반대파를 배려하는 이유는 반대파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다. 반대파가 있어야 자기가 견제받아서 실수 줄일 수 있다. 절대권력은 절대 망한다.”

‘박근혜 대통령되면 안된다’던 MB
재임기간 내내 헤맨 탓에
박근혜 주변에 대한 조치 못해

-그래도 2011년 말 한나라당이 10·26재보궐 패배 등 지지율이 추락했을 때 당시 박근혜 위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자고 나서지 않았나.

“당시 한나라당은 홍준표 체제로 돌파할 수 없었다. 대통령이 목표인 박 대통령이 나서서 당을 살려놓은 뒤 대선 도전해라, 그런 명분이 있었다. 사실 나도 나름으론 박근혜 대통령이 돌파하기 힘들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그걸 몰랐겠나. 박 대통령이 딴 건 몰라도 정치적 아이큐는 높다. 그래서 처음엔 거부한 거다. 그러다가 박근혜 비대위원회에 공천권까지 전권 주는 걸로 넘어가버렸다. 그뒤 놀랍게도 박근혜 비대위는 총선 승리 거머쥐고 그 여세로 대선까지 간 거다. 박 대통령과 나는 (2007년 네거티브전 등으로) 불편하고 어려운 관계인데, 박 대통령은 나를 굉장히 어렵고 두렵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날 직접적으로 비난한 적은 없으니까. 그리고 내 경조사에 빠진 적이 없다. (웃음) 아마 내가 본인을 너무 잘 안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 같다.”

재임 기간 내내 헤맨 엠비, 박근혜 못 건드려

-박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에 도왔던 사람들, 전여옥·유승민·이혜훈 등은 최순실의 농단이 이렇게까지일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도와줬다면 책임이 큰 거 아닌가?

“그분들 뿐 아니라 저한테도 책임이 있죠.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잖아요. 대통령으로 뽑았으니까. 근데 박 대통령을 모시던 사람들이 갈라서는 지점은, 모두 ‘아니되옵니다’라는 말을 할 때였다. ‘모든 게 지당하옵니다’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아웃’이 되는 거다. 박 대통령 모셨던 사람들도 가까이서 일하다 보면 이상하잖나. 보이지 않는 쪽에서 누군가 영향력 행사하는 게 느껴지니깐. 그렇게 해가지고 일이 제대로 될까 싶어 충언하면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도 ‘아니되옵니다’ 허용하지 않았잖나. 본인도 이명박 정부 때 ‘아니되옵니다’ 하다가 주변부에 있었는데.

“이 대통령은 실리주이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가 어렵거나 불리하면 ‘아니되옵니다’ 에 귀기울인다. 그러다가 다시 자리 잡으면 안 듣지.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자기가 불리할 때도 고언을 듣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박 대통령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을텐데 결국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오는 걸 도와줬다.

“이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 대해 가진 생각은 시종일관 같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되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본인이 대통령 된 다음에 박 대통령 주변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었는데 못한 이유는 박 대통령이 대립선상에서 큰 힘을 갖고 있어서 섣불리 건드리기 힘들었고, 또 본인이 재임기간 내내 헤맸기 때문이다. 본인 주변 사람들이 국정농단을 벌였으니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랄 수도 없는 처지였다. 난 지금 사태에 이 대통령 책임도 크다고 본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이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0대 맞고 끝날 걸 100대 맞겠다고

정두언 전 의원은 2007년 이후에도,기회가 닿을 때마다 지금과 같은 ‘어이상실 사태’를 예견해왔다. 특히 새누리당 대다수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서슬에 눌려 있던 2015년 11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들 벌거벗은 임금 앞에서 ‘옷이 아름다우십니다’만 연발하고 있다”며 맹질타한 적이 있다. 앞일을 내다본 그의‘신통력’에 기대어,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내친김에 물었다.

-박 대통령, 결국 어떤 선택을 할까?

“내가 볼 때는 10대 맞고 끝날 걸 100대 맞을 일로 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미 민심은 둑을 넘어버렸다. 지지율이 5%라는 것은 공무원들도 다 돌아섰다는 거다. 그런데 현실 직시 못하고, 속된 말로 개기고 있는 거다. 박 대통령에게만 자진퇴진을 기대할 순 없다. 정치권에서도 총리 추천, 개헌, 탄핵 등 정치일정 합의해나가야 한다. 그게 안되는 이유는 유력한 대선 주자들이 대권을 눈앞에 두고 지금 현상을 자기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자기가 유력한 후보니까 왜 내각제 해야 하냐고 할 거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한나라당 깨지면 이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과 합칠 수 있으니 자기가 유리하다고 보는 거다. 두 사람 욕심 때문에 정치일정이 안 만들어지는 거다.”

-탄핵으로 가면 성공할까?

“탄핵은 사실상 발의할 때부터 재적 의원 3분의 2(200명)를 확보해야 하는 거다. 발의했는데 사람 못 모으면 정국이 더 꼬인다.

그 키는 새누리당이 쥐고 있다. 새누리당이 쪼개지든지 입장을 분명히 밝히든지 해야 하는데 이정현 대표가 저리 버티니, 그걸 흔들기 위해 몇몇이 선도탈당을 한다는 거 아닌가. 빨리 분당이 되든지 비대위체제로 전환해서 탄핵 입장 정해든지 해야 하는데 지금 모든 것이 다 불투명해서 나라가 굉장히 걱정이 되는 상황이다. 국민들에게 주말마다 거리로 나오라고 할 순 없는 일 아닌가.”

박근혜, 시간 멈춘 세월호 부모 심정 알기나 할까

-‘대통령의 7시간’은 밝혀질까?

“팽목항에 가면 이런 쪽지가 쓰여있다. “○○야, 내가 (세월호 참사) 그 전날로만 돌아가면 아무 데도 못가게했을 텐데.” 가족들은 지금도 그 시간에서 살고 있는 거다. 평생 그 시간에 묶여 살고 있는 거다. ‘그때 대통령이 뭐라도 지시했더라면’ 하며 되뇌고, 또 되뇌고. 그게 유족들에겐 현재진행형이다. 옛날에 박종철 엄마가 “철아, 니가 고문당하고 있을 때 나는 잠을 자고 있었어. 그런 내가 용서가 안돼” 라고 말했다. 세월호 7시간이라는 게 그 가족들한테는 평생 머물러있는 시간, 자기자신을 학대하는 시간이다. 우리도 거기에 공감하지 않나. 그런데 대통령은 보고를 몇번 받았다는데 지시한 게 없다. 7시간 동안 뭐를 했느냐, 그게 안 밝혀지더라도, 대통령이 저렇게 나오는 건 정말 잘못된 거다. 부모 심정으로 돌아가면 그 시간의 의미와 깊이가 달라지는 거다. 그런데 박 대통령, 그 사람은 그 심정을 상상이라도 하겠어?”

치열했던 2007년이 지나가고, 2012년 대선 때 우리는 박 대통령과 최씨 일가의 문제를 검증해볼 또 한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2012년 9월에야 경선을 마무리지은 민주통합당은 이후 문재인 후보를 음해한 십자군알바단과 국정원 댓글사건,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에 집중하느라 최씨 일가 의혹을 다룰만한 여유도, 능력도 없었다. 당시 문재인 캠프에 있었던 한 인사는 말했다.“중정·합동수사본부 자료를 봤지만, 박 대통령이 아무리 구중궁궐에서 화초처럼 살았다고 하더라도 최태민에게 그리 홀렸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미스테리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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