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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광장에 패러디꽃이 피었습니다

류. 2016. 11. 29. 23:00
광장에 패러디꽃이 피었습니다
http://v.media.daum.net/v/20161127134605219

출처 :  [미디어다음] 사회일반 
글쓴이 : 한겨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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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게이트와 패러디

▶ 촛불집회로 주말마다 광장이 후끈합니다. 최근 광장의 에너지는 2000년 이후 봤던 에너지와는 다릅니다. 우선 재미있습니다. 광장 에너지의 원래 특징은 날선 분노입니다. 분노는 폭력을 내포합니다. 하지만 광장은 즐거운 축제입니다. 꼭두각시 노릇을 한 대통령과 비선실세에 대한 패러디가 넘쳐납니다. 덕분에 광장의 문턱은 낮아졌고 집회 규모는 갈수록 커집니다. 촛불이 꺼질 것이라고 코웃음 치던 여당이 탄핵을 이야기합니다. 패러디는 분노보다 강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민주 패러디 공화국입니다.
‘5차 범국민대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시민들이 비옷과 우산을 쓴 채로 참석하고 있다. 박수지 기자

10월말 시작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시위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우선 규모부터 매번 기록 경신 중이다. 이번주에는 서울에서만 최소 150만명이 모일 전망이다. 양상도 다르다. 화염병과 쇠파이프 대신 촛불과 꽃스티커가 손에 들려 있다. “사랑도 명예도”로 시작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보다 “전해주고 싶어”로 시작되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더 많이 불린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은 물론 나 홀로 깃발을 들고 시위에 나온 ‘혼참족’도 등장했다.

박근혜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에는 ‘민주묘총’ ‘트잉여 운동연합’ 등 패러디 깃발들도 등장했다. 인터넷·트위터 갈무리.

시위의 문턱이 예전보다 낮아진 것은 21세기 대한민국을 봉건시대 이전으로 돌려놓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1차적 원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가 된 최초의 사건이다. 하지만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매주 모이는 것은 분노 때문만은 아니다. 분노와 폭력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또 다른 이유는 시위가 과거와 달리 재미있어졌다는 점이다. 시위를 재미있게 만든 일등공신의 하나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에 대한 패러디다. 피켓과 구호에 주로 머물렀던 과거와 달리 최근 촛불문화제에서는 사진·포스터·그림·영상·노래 등 온갖 장르에 걸쳐 패러디가 펼쳐지고 있다. 최순실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임앱이 있을 정도다. 이 게임은 최순실씨와 닮은 주인공이 죽마를 타면서 수갑으로 된 장애물을 피하는 게임이다. 실패하면 주인공이 감옥에서 “언니 구해줘”라고 말한다.

게다가 패러디가 광장에만 머물던 과거와 달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촛불집회와 달리 거의 모든 청소년과 40~50대가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같은 에스엔에스를 사용하고 있다. 광장의 시공간이 무한 연장된 셈이다. 촛불이 곧 꺼질 것이라는 대통령 친위대의 코웃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겁을 먹은 여당마저 대통령 탄핵에 참여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패러디는 자기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정곡을 찌르는 패러디는 대중성을 갖는데 이번 촛불집회에서 이런 적극적인 패러디가 대중의 참여와 확산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촛불집회에서
박근혜·최순실 각종 패러디 쏟아져

이화여대 부정입학 때부터 시작해
대국민담화·길라임에서 대폭발



정곡 찌르는 패러디, 집회를 축제로
SNS 발달로 광장 시공간 한계 없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흐름 보여
“전세계 유례없는 축제적 혁명”

패러디, 유서깊은 인류의 본능

패러디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시대 경문왕(?~875)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가 나온다. 민심을 경청하지 않는 임금을 풍자한 것으로 보이는 이 설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는 물론 많은 나라에도 존재한다. 패러디는 다른 노래에 병행하는 노래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파로데이아’에서 왔다. 그만큼 권력을 비꼬고 싶은 것은 인류의 오래된 본능이다.

하지만 패러디는 대체로 유효기간이 짧다. 대중에 영합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유행처럼 번졌다가 금세 사라진다. 거기다 패러디의 특성이 특정인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에 수위조절에 실패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이래저래 쉽지 않은 창작 행위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패러디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박 대통령이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데다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 성향이 강했다. 대중과의 접점이 많지 않아 흥행성 높은 풍자거리도 많지 않았다. 거기다 박 대통령은 자신를 소재로 한 패러디에 엄격한 사법처리 잣대를 들이댔다.

하지만 그의 공주 이미지가 완전 허상이라는 것이 최근 언론보도와 검찰 수사로 하나씩 하나씩 밝혀졌다. 특히 정치경력이 전무한 일반인인 최순실씨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꼭두각시’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대통령의 이미지와 실제의 간극이 너무 컸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최순실씨도 패러디 소재로 적합했다. 특히 최씨는 고3 때 학교를 17일밖에 가지 않은 딸 정유라씨를 승마특기생으로 대학에 부정입학시킨 의혹을 받았다. 게다가 졸부처럼 보이는 최씨의 외모와 패션은 패러디 대상에 적격이었다. 고가의 명품회사가 최씨가 착용한 명품이 한사코 자기 회사 제품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것만 봐도 그의 이미지가 얼마나 나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상반되는 듯하지만 통하는 이미지의 박근혜·최순실 조합은 훌륭한 패러디 대상이다.

광장의 발랄한 패러디는 이화여대에서 시작됐다. 고졸에 대학 청강생이던 최순실씨가 딸 정유라씨를 어떻게든 이대생을 만들기 위해 들인 노력은 가공할 만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 대통령을 시켜 문화체육관광부 간부 2명을 공직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한 일이다. 이 간부들은 2013년 5월 정유라씨의 승마대회 성적을 둘러싼 시비를 조사해 최씨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올렸다가 해직당했다. 박 대통령은 장관을 청와대로 직접 부른 뒤 수첩을 꺼내 두 사람 이름을 거명하면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좌천 인사를 지시했다. 대통령까지 동원해 국가대표가 된 정씨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체육특기자로 2015학번으로 이화여대에 합격했다. 9월말 언론보도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7월부터 학내 문제로 경찰을 끌어들인 총장 퇴진을 외치던 이대생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 학생들은 특히 정유라가 민감한 대입과 학점에서 온갖 특혜를 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분노했다.

이화여대에 붙은 정유라씨의 부정입학과 성적 특혜 의혹을 비판하는 자보들. 한겨레 자료사진.

이때부터 이화여대에는 정씨의 부정입학과 성적 특혜 의혹 관련 대자보와 게시물이 붙기 시작했다. 당시 패러디는 학생답게 담백했지만 무게감이 있었다. 승마특기생인 금수저 정씨에게 편지글 형식으로 쓴 ‘어디선가 말을 타고 있는 너에게’라는 대자보가 붙는가 하면 정유라씨에게 학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는 이화여대 의류학과가 있는 건물에는 ‘馬’(말 마)가 크게 쓰인 A4용지가 부착됐다. ‘말만 있으면 에이플러스인가요’란 스티커도 붙었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생활환경관 건물에 최순실(60) 씨 딸 정유라(20) 씨 이화여대 입학 과정과 학점 관리 특혜 의혹을 비판하는 포스트잇과 대자보가 등장했다. 사진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이대생의 이런 패러디는 입시부정과 말, 그리고 최순실의 치맛바람이 겹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확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불리는 까닭이 금수저들이 온갖 특혜를 누리는 불공정함 때문이었는데 정씨는 금수저가 헬조선을 어떻게 즐기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독일로 도피한 최씨에게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꼭두각시→자괴감→길라임

정유라씨와 말에 머물던 패러디의 물꼬가 광장으로 터져나오게 된 계기는 10월24일 최순실씨의 취미가 대통령 연설문 고치기라는 설이 사실로 확인되면서부터였다. 딸의 부정입학 이슈가 어머니의 국정농단으로 확대된 것이다. 최씨의 태블릿피시에는 대통령 연설문은 물론 인사자료·군사기밀이 들어 있었고 이를 대통령이 보기 전에 미리 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당·승려·목사를 거치며 1970년대부터 대통령 딸 박근혜를 앞세워 기업한테서 돈을 뜯던 최태민씨의 딸인 순실씨가 사실상 대통령 노릇을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의혹은 다음날인 10월25일 박 대통령이 1분30초가량의 대국민 사과로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는 해명이 시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그주 토요일인 29일 처음으로 촛불집회가 열렸다.

첫 집회의 구호는 #이게 나라냐 #박근혜는 퇴진하라였다. 2만명이 모인 이 시위에서 패러디의 주제는 ‘꼭두각시’였다.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을 인형처럼 조종하는 패러디가 처음 등장했다. 수수한 패러디는 가고 화끈한 패러디의 시대가 열렸다.

패러디의 정점은 대통령의 2차 사과였다. 정호성·안봉근·이재만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사퇴시킨 뒤 내놓은 11월4일 대통령 담화문이 완벽하게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박 대통령은 이날 9분여의 회견에서 “서글픈 마음에 밤잠을 이루기 힘들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자괴감’은 대통령의 심경이 아니라 ‘이러려고 세금 내고 국민 했나’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마음에 더 어울리는 단어였다.

이때 패러디가 얼마나 풍성했는지는 ‘대국민 담화 짤 생성기’가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짤’이란 웃긴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을 뜻하는 누리꾼들의 은어다. 가령 이 생성기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사진을 넣고 단식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이 대표가 대국민 담화를 하면서 “내가 이러려고 단식을 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라는 장면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포털에서 박근혜 패러디를 치면 가장 많이 뜨는 이미지가 이런 종류다.

민심이 이렇게 돌아섰는데도 박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하고 권력욕을 놓지 않았다. 이정현 대표 등 대통령 친위대는 박 대통령 2선 후퇴를 주장하는 여당 의원을 패륜아라고 몰아붙였다. 11월5일 서울에서만 50만명의 시민이 촛불집회에 나왔고 12일에는 120만명이 청와대 주변으로 행진했다. 집회의 구호는 #퇴진하라 #탄핵하라로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그주부터는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탄핵을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5차 범국민대회’가 열린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상인들이 집회 참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손난로 등을 판매하고 있다. 박수지 기자

패러디의 한계효용체감법칙이 사라지다

패러디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자괴감을 정점으로 상승세가 꺾여야 할 패러디는 ‘길라임’이라는 주사제를 맞고 다시 수직상승했다. ‘길라임’은 2011년 인기를 끌었던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여자 주인공 이름이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표 시절부터 고가의 회원제 시설인 서울 강남의 차움병원에서 최순실·순득 자매의 이름으로 수십 차례 주사제를 대리처방 했으며 이 의료 시설을 이용할 때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15일 터져나왔다. ‘길라임’은 박근혜·최순실 중심이었던 패러디에 자연스럽게 스타가 등장하게 만들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자괴감’에 ‘길라임’이 더해지면서 정말 라임처럼 상큼한 패러디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이러려고 길라임 했나 자괴감이 들어”라는 패러디가 가장 많이 돌게 된 까닭이다. 또 “이게 최순입니까? 확siri해요?”(극중 남자 주인공 현빈의 단골 멘트인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를 패러디한 것) 같은 패러디도 인기를 끌었다.

패러디가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광장의 100만명의 피켓과 구호에서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4900만명도 열심히 관련 글과 이미지를 검색하고 있다. 구글 검색어 순위인 구글트렌드를 보면,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길라임’이 ‘탄핵’보다 더 많이 검색됐음을 알 수 있다. 또 구글에서 최근 한달간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는 ‘박근혜-장시호’였고 ‘박근혜-길라임’은 4위였다. 반면 하야는 13위, 탄핵은 20위였다. 또 같은 기간 검색 관련 주제 1위는 라임(열매), 2위는 마약이었다. 대중들이 박근혜 게이트를 이성보다는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패러디의 역할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광장의 노래도 달라졌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나온 윤민석의 ‘대한민국 헌법 1조’는 여전히 광장의 애창곡이다. 하지만 박근혜 게이트를 소재로 만든 ‘이게 나라냐 ㅅㅂ’도 인기몰이 중이다. 서태지의 ‘하여가’의 가사를 바꾼 ‘하야가’와 가수 이승환이 촛불집회에서 직접 부른 그의 노래 ‘덩크슛’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19일 광장에서는 <시크릿 가든> 주제곡 ‘나타나’가 불리기도 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그 실망감을 희화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지만 일단 유머를 갖고 대처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성숙된 면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이어 “외상후엔 스트레스성 장애가 생길 수도 외상후 성장을 할 수도 있다. 미국은 1930년 대공황 뒤 오히려 사회가 성숙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패러디는 앞으로 인격모독이 아니라 웃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12개 예술대 총학생회 대표자들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차은택·김종 등 문화예술계 비리 인사 처벌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2008년 광우병 때도 패러디가 많았지만 그때의 미디어 환경은 지금 보면 원시적일 정도”라며 “지금 스마트폰의 전송 방식이 발전하고 사진·동영상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사람들이 늘면서 커뮤니케이션 흐름이 달라졌고 촛불집회도 활력이 넘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어 “혁명은 보통 유혈적인데 지금 광장의 혁명은 축제적이다. 혁명이란 민중의 주권적 의지가 직접 표출되는 데 폭력을 동반해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탄핵과 퇴진 등 폭력 없는 권력 교체가 진행중인데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