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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동상 아래 입주한 사람들 "퇴진하면 퇴거할게" "박근혜 퉤근혜"

류. 2016. 11. 11. 14:50

광화문 텐트촌의 '웃픈 퍼포먼스'... "12일 텐트 치고 1박 2일"

[오마이뉴스 글:김병기, 사진:정대희, 편집:김지현]



[들어가며] 광장이 권력이다

광장이 권력이다. 광장의 성난 목소리만이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다. 4년 내내  대통령 거수기, 아니 최순실 돌격대처럼 행동한 새누리당을 해체하는 일도 광장이 할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일벌백계할 수 있는 힘도 정치검찰이 아닌 광장의 채찍에서 나온다. 권력의 단물을 빨다가 낯빛을 바꾼 보수언론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광장의 정의다.

[광화문 캠핑족] "퇴진도 복이다, 체포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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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아래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모습을 담아봤다.
ⓒ 정대희


지난 5일 성난 시민 20여만 명이 서울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오기 전부터 광장에 눌러앉은 사람들이 있다. 30여 동의 이색 캠핑족. 바람에 흔들리지만 이순신 동상 밑에서 학익진을 펼친 모습이다. 이들은 온종일 빌딩 숲속에서, 북악산 아래 자리 잡은 청와대를 노려보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 세월호 추모 광장을 찾은 학생, 시민들을 위한 문화 퍼포먼스를 열면서.

영하의 날씨였던 지난 9일에도 '퇴진 캠핑촌'은 텐트촌 입주 신청을 받고 있었다. 6박 7일째였다. 모든 텐트 지붕에는 아래와 같이 톡톡 튀는 '호객' 구호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퇴진하면 퇴거할게!"
"퇴진도 복이다. 체포될래?"
"박근혜, 퉤근혜"('퉤'자의 마지막 'ㅣ'는 침을 뱉는 것을 연상케 하는 느낌표다.)
"대통령의 비대통령화, 비정상이 정상화하는 지름길입니다."

텐트촌 입주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소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난 4일 이곳에서 '박근혜 퇴진 문화예술인 시국선언'을 한 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텐트를 빼앗기기도 했다. 이들은 노숙농성으로 버텼고 다음날부터 텐트를 치고 춤과 노래 공연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문화예술인들의 다양한 끼를 발산하고 있다.

[소리꾼] "개기지 말고 물러가라 강강술래~"

가령 이런 식이다. '퇴진 캠핑'이라고 적힌 텐트 입주자 하애정(경기민예총 풍물굿위원회 김포지부장)씨에게 시민들과 함께하는 노래를 한번 요청하자, 귀에 쏙쏙 박히는 '퇴진 강강수월래'를 들려줬다. 



"몰아내자 몰아내자 강강술래~ 근혜야 물러가라 강강술래~ 순실이도 물러가라 강강술래~ 국민들 피곤하다 강강술래~ 개기지 말고 물러가라 강강술래~"  

[만화가] 12일 민중총궐기에 쓸 대형걸개 그림에는... 

만화가인 이도헌씨는 1인용 텐트 속에서 촛불 2개를 켜놓고 오는 12일 민중총궐기 때 걸 걸개그림을 메모장에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날부터 광화문 광장 바닥에 걸개그림판을 깔아놓고 작업을 한단다. 오가는 시민들은 그의 걸개그림 작업을 직접 볼 수 있다.     

▲ 걸개그림 이도헌 만화가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텐트에서 그린 걸개그림의 밑그림
ⓒ 정대희


이씨는 "지금 구상한 초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갔을 때 국회의원들이 하야하라고 피켓을 들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박근혜는 그냥 물러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의 준엄한 꾸짖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내가 블랙리스트? 웃프다"

'노숙택'이라는 문패가 적힌 텐트 주변에 가면 사진기 셔터를 연신 누르고 있는 노순택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아주 특별한 캠핑촌의 기록을 남기는 그는 사진작가로는 최초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노 작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부터 세월호와 관련된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해왔고,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다.  

"명단이 너무 허술해서 실망했어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에게 해당 기사 링크와 함께 메시지를 보냈더니, '헐~ 그분이 아빠를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나요?'라는 답신이 왔습니다. 슬픈 동시에 좀 웃긴, '웃픈 느낌'이었습니다." 

노 작가는 또 "무당 정권, 무당 정치라는 말이 나돌기도 하는데 저는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에서 300명이 넘는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백남기 어른을 물대포로 돌아가시게 한 '살인정권'"이라면서 "사람들이 죽어간 문제를 규명하고 책임을 묻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우리 차례다, 무도한 권력에 항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담쟁이 시인] "절망을 푸르게 덮을 때까지 손에 손잡고"

▲  10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아래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모습을 담아봤다.
ⓒ 정대희


기자가 찾아간 날은 평일임에도 광화문 광장에는 세월호 참사 추모객들도 많았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도 단체로 추모를 한 뒤에 바로 옆 캠핑촌에서 벌어지는 행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 중에는 '담쟁이' 시인이기도 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있었다. 격려차 캠핑촌을 방문했단다.  

"본래 예술인들은 불온하죠. 거기서 창의성이 나옵니다. 예술인들을 흑백논리로 재단을 해서 누구는 지원하고 누구는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핍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문화행정입니다. 대통령 풍자 연극을 올리거나 그림을 그렸다던가, 세월호와 관련한 시국선언을 한 것을 보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거 잖아요. 대통령 옆에서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대통령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예술가를 탄압한 겁니다. 대통령 직접 책임질 일이죠."

도 의원은 또 "최근 게이트의 몸통은 박근혜 대통령이기에 통치력을 행사할 수 없고 통치력을 행사해서도 안 된다"라면서 자신이 쓴 시 '담쟁이'의 시구절을 인용하면서 12일 광화문에 모이자고 강조했다.  

"담쟁이는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습니다. 절망적인 환경에 놓여 있을 때 담쟁이는 그곳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만듭니다. 우리도 이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어내기 위해서 하나에서 백, 하나에서 천명까지 손에 손잡고 이 벽을 넘어가야 합니다."

[춤꾼] "난 블랙리스트 2관왕... 소름 돋는다"

▲  10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아래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모습을 담아봤다.
ⓒ 정대희


장순향 한양대학교 교수(한국민족춤협회)는 "난 블랙리스트 2관왕"이라며 웃었다. 세월호 참사 서명 등 2건에 걸쳐서 등재됐단다. 이날 광장에서 그는 살풀이 춤을 췄다. 직전에는 학생들에게 광장에서 느낀 바를 몸으로 표현해보라고 한 뒤 즉석에서 춤 실습 시험까지 봤단다. 중국인 관광객과 시민들은 핸드폰으로 광장에서의 실습시험 풍경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돈으로 우리들을 농단한 것에 분노합니다. 최순실의 태블릿PC가 폭로되지 않았다면 저들은 끝없이 그 짓을 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아주 거덜내려고 했습니다. 아찔하고 소름이 돋습니다. 이번에 드러났듯이 박근혜 대통령은 꼭두각시였습니다. 지금도 검은 손들이 뒤에서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제 빨리 내려와야 합니다."

[동화작가] "퇴진하는 장면을 캠핑장에서 보겠다"

<지리산 소년병> 등을 쓴 동화작가 김하늘(51)씨도 광화문 캠핑장에 텐트를 쳤다. 그의 텐트에는 '어린이 문학인의 방'이라고 적혀있다.  

"아이들이 좋은 세상에 살게 하려고 글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글만 써서는 좋은 세상이 오지 않는 것 같네요. 작가이기에 글을 쓰지만 그 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만 글에서 말하려는 세상이 오는 게 아닐까요? 행동과 더불어서 글을 써야 합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는 장면을 이 광장에서 볼 것"이라면서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려올 때까지 여기 있겠다"고 말했다. 

[詩詩한 시인] "퇴진 텐트로 청와대를 포위하자" 

'詩詩(시시)한 삶을 꿈꾸는 송경동의 방'은 비어있는 때가 많은 것 같았다. 그는 이곳을 방문한 동료 문인들에게 "텐트촌에 입주하라"고 으르고 달래고, 퇴진 텐트촌을 찾는 손님들에게 안내하는 일로 바빴다.       

- 왜, 여기에 텐트쳤나?
"열 받아서 그랬다. TV만 보고 집에 있을 수만 없었다."

- 가장 크게 분노한 것은?
"대통령이 비선실세 조직해서 자기 뒷간이나 되는 것처럼 빼돌렸다. 중요한 국가기밀, 국정운영에 대한 사안을 위임받지 않은 사인에게 넘기고 지시를 따랐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대부분의 국민이 '하야'를 외치고 있는데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온 나라가 침몰하는 마음인데, 자기 혼자만 탈출하려고 하고 있다. 나쁜 선장을 가만히 놔둘 수 없어서 붙잡으러 왔다."

- 문화예술인들이 텐트를 친 이유는? 
"지난 4일 문화예술인 8000명이 시국선언을 했다. 단일 건으로 8000명의 문화예술인이 시국선언한 것은 해방 이후 처음이다. 강력한 문제제기가 필요했다. 1만명에 달하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사찰한 것 하나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감이다. 추운 날씨이지만 박근혜 퇴진의 마중물이 되자는 생각으로 광장에 나와 텐트를 쳤다."

- 텐트촌은 언제까지 운영되나?
"무기한이다. 박근혜가 방을 빼야 우리도 집에 갈 수 있다. 본인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범법사실을 시인했고 검찰수사와 특검까지 수용하겠다고 했는데, 정치검찰이 진실을 밝힐 수 있나?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서 법정에 서야 한다. 그때까지 캠핑을 계속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오는 12일 민중총궐기 날에 광화문 퇴진 캠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광화문 광장을 수많은 텐트로 뒤덮어야 합니다. 청와대를 둘러싸야 합니다. 1987년 6월처럼, 4.19 때처럼 국민들의 분노와 뜻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날씨가 좀 춥지만 12일 민중총궐기 때에 범국민항쟁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날부터 광화문 광장을 텐트로 뒤덮어서 진실이 다시는 침몰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  10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아래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모습을 담아봤다.
ⓒ 정대희


[나오며] '분노의 텐트'로 청와대 덮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검찰, 보수언론은 모두 한 몸뚱이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 시궁창 권력의 금자탑을 지탱해 온 한 '똥덩어리'였다. 그동안의 숱한 거짓이 드러나자 이들은 다시 헤쳐모여하고 있다. 거국내각, 특검... 시류에 편승하면서 간판만 바꿔달고 부패한 권력을 다시 접수할 채비를 하고 있다. 

부패의 재구성. 정략과 야합이 아니라 '분노의 광장'만이 이 부패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다. 광장에 모인 수만큼 권력의 힘은 세진다. 오는 12일 시민 권력의 광장에 텐트를 치고 담쟁이처럼 청와대를 푸르게 덮자.  

▲  10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아래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모습을 담아봤다.
ⓒ 정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