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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게이트 : 하야를 ‘피하기 어려운’ 이유들

류. 2016. 11. 1. 00:59

‘최순실 스캔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정치권에서는 시국 수습 방안에 대한 논의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야권은 애초 특검-거국내각 등을 거론했지만, 이제는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거리를 뒀다. 수습 방안을 논하기에는 이르다는 판단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특검 수용에 이어 거국중립내각 수용을 청와대에 건의하는 등 연일 수습방안을 내놓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이후 일정을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수습방안의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을 보호하면서 야당과의 타협을 이루겠다는 데 있다. 31일 열린 국회의장과 3당 원내대표간 회동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야당의 제안을 예외없이 수용했는데 그 즉시 차버리는 이유가 뭐냐”며 “대통령을 끌어내리자는 것인가”라고 불만을 표시하고 퇴장한 장면은 새누리발 시국수습 방안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정치위기가 새누리당 지도부의 희망대로 대통령을 보호하면서 타협을 이루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여야 모두 기피하는 대통령의 ‘하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자.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핵심인 최순실 씨(가운데 검은모자)가 31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에 검은 모자를 눌러쓴채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정의철 기자

대통령 자신이 직접 연루

우선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스캔들의 중심에 있다는 게 핵심적 이유다.

이전 정권에서도 측근이나 친인척의 비리로 정치위기가 초래된 적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씨의 경우와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구속이다. 이들 친인척은 ‘호가호위(狐假虎威)’, 즉 대통령의 위세를 빌려서 비리를 저질렀다. 대통령의 아들이나, 형이었으니 누가봐도 그 위세를 인정했던 것이다. 대신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은 직접 비리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항변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최순실씨는 대통령의 친인척이 아니고 심지어 이번 사건 직전까지 최씨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최 씨 혼자서는 대통령의 위세를 등에 업으려 해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이번 사건은 ‘최순실 스캔들’을 넘어 ‘박근혜 게이트’가 됐다.

게다가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직접 인정하기도 했다. 대개 권력비리는 측근의 과잉충성이나 일탈로 처리되는 데 반해, 이번 사건에서는 대통령이 기자회견에 나서서 최 씨를 보호하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이) 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번 스캔들의 두 측면은 기밀유출과 국정농단이 하나이고, 재벌과 기업의 손목을 비틀어 돈을 갈취한 것이 하나다. 앞의 측면은 대통령 스스로 이미 인정했고, 뒤의 측면은 아직 수사중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핵심이 되는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은 여러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최순실 씨를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안 수석이 최씨를 모른다면 두 사람을 이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최씨나 안 수석의 위치를 볼 때 이 인물은 박근혜 대통령이 될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이번 스캔들에서 책임을 회피하려야 할 수 없게 된 이유다.

분열한 집권세력

대통령 자신이 스캔들의 중심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튼튼하다면 수습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대통령을 둘러싼 여당과 검찰, 나아가 재계나 보수언론 등의 지지세력은 분열하는 중이다. 여기엔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독선적 정치스타일이 영향을 끼쳤다.

우선 대통령의 뒷심이 되어야 할 새누리당에서는 친박 대 비박의 갈등이 노골화되고 있다. 다수를 차지하는 친박은 이렇다할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지난 총선 과정에서 깊은 앙금이 남은 비박계는 야당이나 다름없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31일엔 비박계 주도로 이정현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연판장이 돌았다. 친박 일부도 여기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의 마이웨이도 눈에 띈다. 검찰이 청와대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우병우 민정수석이 현직에 있을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 전 민정수석은 ‘검찰 내에 적이 많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우 전 수석이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면서 독주했던 만큼, 그가 물러난 빈 자리는 역설적으로 크게 느껴질 것이다.

전통적으로 보수 정부의 지지세력이 되어야 할 재계와 언론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재계는 이번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던 재단 설립과정이나 전국적으로 하나씩 떠맡아야 했던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이유로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해왔다. 새삼 박근혜 정부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기 어렵다.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로 부터 ‘부패한 기득권 언론’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만큼 감정의 골은 매우 깊다.

1년 이상 남은 임기 탓에 거국중립내각도 현실성 없어

정치위기가 조성된 시기도 박 대통령에겐 매우 불리하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면서 궁지에 몰렸었다. 내곡동 사저 문제도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당내에서 박근혜라는 ‘차기권력’이 뚜렷한 상태였다. 자연스레 당의 주도권을 박 대통령에게 넘기면서 ‘안전한’ 2선 후퇴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야 모두 본격적인 대선 체제가 아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여권내의 차기 논의를 억눌러왔었다. 누구에게 권력을 넘기려해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셈이다.

1년 이상 남은 임기도 ‘거국중립내각’이라는 시국수습 방안이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현재 여야의 논의에 따르면 거국중립내각의 골자는 ‘여야가 합의’하는 국무총리를 내세운 후 박 대통령이 2선 후퇴하는 데 있다. 이 경우 옹립되는 총리는 1년 넘게 국정을 운영하는 사실상의 대통령이 된다.

과거 노태우 정부 시기였던 1992년의 현승종 내각은 노태우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지를 과시하는 정도였지, 실질적 권력 행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기적으로도 대선 직전이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청와대로 ‘2선후퇴’한 대통령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위헌소지도 있다. 거국중립내각이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집권기간의 1/4가량을 위임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국민이 납득하기도 어렵다. 여야를 막론해 기득권 정치인들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들끼리의 타협을 통해 새로운 권력을 수립했다는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득권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이미 전세계적 추세다. 여야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국민의 권능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누적된 경제, 정치문제의 폭발

이번 정치위기는 표면상 최순실씨라는 ‘문제인물’이 드러나면서 생겨났지만 그 배경에는 현 정부 들어서 누적된 경제적, 정치적 문제가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지속된 장기불황과 급속하게 늘어난 가계부채는 한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성장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나 경제민주화에 발을 걸친 박근혜 정부는 경제위기 해결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대중의 불만이 보수 정부로 향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통합진보당 해산에서 과거 독재시절에나 활용했을 법한 ‘공작정치’를 되살렸다. 대북정책 역시 ‘통일대박’에서 ‘북한붕괴’까지 널뛰기를 했다. 사드가 TK지역 민심을 흔들고, 대중국 무역에 종사하는 기업인들의 우려를 자아낸 것도 정부에 대한 불만을 덧쌓는 계기였다.

누적된 경제, 정치적 불만은 수면 아래에 거대한 시한폭탄처럼 잠재한 상태였다. 헬조선, 수저계급론이 확산된 것은 그 반영이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의혹이었다. 가장 아프면서도 근본적인 반감이 만들어진 셈이다. 지난 29일의 도심 집회가 경찰은 물론, 주최측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규모로 발전한 것은 이런 배경 위에서다.

검찰의 수사가 일단락이 되고나면 대중의 관심은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구체적 범죄 혐의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기소)를 피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 범죄의 혐의는 뚜렷하지만 대통령이기 때문에 기소는 하지 않는다는 것은 법 조문의 수준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가 특정되었을 때 국민이 이를 양해할지는 미지수다. 누적된 경제, 정치 문제는 대중의 분노가 어디까지 발전할 지를 예측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시민들이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청와대 방향으로 촛불행진을 시도하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시민들이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며 청와대 방향으로 촛불행진을 시도하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하야는 헌정중단 아니다

일각에서는 ‘하야’를 헌정중단으로 간주하면서 대통령의 하야가 큰 국민의 고통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런 우려는 일리가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야가 절대 넘어서는 안되는 레드라인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

우선 하야는 헌정중단이 아니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궐위시 60일 이내의 대통령 선거를 규정하고 있다. 하야와 같은 상황은 이미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 셈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두환 정권과 야권-재야는 협상을 거쳐 기존 헌법의 개정절차를 따라 헌법을 개정하고 그해 말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12대 전두환 대통령의 임기도 모두 끝까지 마쳤다. 결국 하야가 헌정중단이며, 큰 혼란을 부를 것이라는 건 지나친 우려다.

박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가, 아닌가는 이번 사건에서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양해를 구할 수 없는 구체적 범죄를 저질렀는가 아닌가, 또는 박 대통령이 계속해서 통치를 이어나갈 권위와 실력을 갖추었는가 아닌가 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국민이 동의한다면’ 하야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반대로 ‘국민이 동의할 수 없다면’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것은 여야에 속한 몇몇 정치엘리트들의 합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 주말 이후로 계속되고 있는 거리시위의 발전 양상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무엇이 될지 알려줄 것이다. 

출처

http://www.vop.co.kr/A000010835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