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무개 선장만 아니었다면, 피할 수 있는 사건이었나
지금 대중의 선장에 대한 분노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며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1) 상업언론이라면 진보 신문이든 보수 신문이든 판매부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신문들은 사람들의 관심사를 다뤄야 한다. 2)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선장에게 잔뜩 화가 나있다. 3) 좌우 신문 모두가 선장의 문제를 다루는 기사들을 많이 내보낸다.
4) 여기에 보수 신문들은 '옳다구나' 하고 선장 비난에 더 열을 올린다. 이런 분위기가 '민심 이반'과 '종북좌파' 다스리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5) 심지어 이제는 대통령까지 슬쩍 이 분위기에 가세했다. 친히 "살인자와 같다"는 규정까지 했다. 6) 모든 국민과 힘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선장이라는 개인을 비난한다. 이 사회 전체가 선장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허락했고, 이제 분위기는 날로 격해진다.
이 패턴에 따라, 사망자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선장을 향한 분노도 커지고 또 커지고 있다. 그 덕에 곧잘 간과되는 것은, 모두의 분노가 태양처럼 이글이글 타오를수록, 태양빛이 비추는 곳 반대편의 그림자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그늘 속에 우리가 진정 보아야만 하는 것들이 가려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위에 걸맞은 능력 없었던 선장·선원, 누구의 책임인가
나는 무엇보다 세월호와 진도VTS 사이의 교신록 내용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내가 그 교신록을 보면서 든 생각은, 선장과 핵심 선원들이 재난대비 안전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었다(실제로 이 점은 최근 검경합동수사본부 수사 과정에서도 선원들이 진술한 부분이다. 청해진해운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더라도, 지난해 직원 118명을 위한 연수 비용으로 겨우 54만 1000원을 사용했다니 할 말 다한 셈이다).
교신록을 보건대, 선원들은 배가 기우는 초기에 뭘 할지 모르고 좌충우돌만 했다. 심지어 세월호에서 탈출한 조타수는 한 인터뷰에서 '막말'을 해서 공분을 키웠다. 그는 "상황이 안 되지 않냐. 객실에 (승객들 대피시키러) 어떻게 가냐"라고 주장했다. 기가 막혔다. 아니, 배가 기울기 전에, 아직 상황이 됐을 때 신속하게 움직였어야지.
이 교신록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측은함이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그 지위에 걸맞은 능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했다. 구조 요청을 하는 것 외에, 이런 사태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은 지난 2월 특별 안전점검에서 세월호의 '선내 비상훈련 실시 여부'를 평가해 '양호' 등급을 줬다.
이런 대충대충이 그저 우연의 산물이었을까? 나는 지난 겨울에 철도민영화 반대 파업 당시에 봤던 글들이 떠올랐다. 일본과 영국의 철도가 민영화된 이래 사고가 급증한 이유는, 바로 민자회사들의 이윤 추구 탓이었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감원해 더 적은 노동자들에게 많은 일을 강요했고 안전 교육과 사고 대비도 철저히 시키지 않았다. 시설이 노후해도 무리하게 운용했다.
나는 기시감을 느낀다. 세월호 선장은 고작 월 200만~300만 원 받는 계약직 비정규직 선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나면 목숨을 바칠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니, 대체 바치는 방법이나 제대로 알려줬나. 심지어 승선 선원들은 최근 수사에서 자신들이 평소 업무 때도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뉘어서 팀워크조차 없었다고 털어 놓을 정도였다.
해운사는 돈을 벌려고 선박을 무리하게 개조했다. 정부는 그걸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낡은 배도 운영할 수 있게 규제까지 풀어줬다. 돈 벌려고 화물 적재는 무리하게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상식이 됐고, 이 역시 단속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고자 숫자조차 제대로 못 세는 재난대응시스템은 또 어땠는가. 사고 같은 것이 세상에 있기나 하겠는가 하고 다들 믿고 사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무엇에 눈이 멀어서.
세월호 선장과 대통령의 자세, 놀랍도록 비슷하다
부도덕한 선장이 이 모든 일을 벌인 것인가? 이 사회의 이윤 논리와 박근혜 정부는 그저 이 비극이 상영되는 무대 한 켠의 '배경 세트'쯤에 불과한 것인가? 모든 사회 문제가 그렇듯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회 구조나 근본 원인을 따지는 것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 책임을 몰아주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떤 선량하고 책임감 강하고 능력있는 세월호 선장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소망하는 그 선장님은 이 참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 대신, 그저 평범하고 나약하며 훈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또다른 사람이 선장이 됐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우리의 상식은 후자의 가능성이 전자보다 아무래도 클 것 같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시스템의 의의는 우발적 요소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키고, 예측과 계획에 입각해 목표를 이뤄나간다는 것이다. 이번 참사의 진정한 비극적 성격은 바로 못난 선장 개인이 가져온 문제를 우리의 시스템이 막지 못했다는 것, 아니 정반대로 우리 시스템이 못난 선장을 만들어냈다는 그 자체다. 그리고 바로 그 시스템은 이 사회의 책임있는 '권력'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여러 외신들이 박근혜의 "선장 살인자" 언급에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영국 < 가디언 > 의 언급은 특히 날카롭다.
"서양에서는 어떠한 국가의 지도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국가적 비극에 대해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하게 되면 그들의 지지율이나, 심지어 그들의 자리도 무사하기 힘들 것이다."
< 시사IN > 의 일침 역시 우리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시스템의 최종 책임자'에서 '구름 위의 심판자'로 자신을 옮겨놓았다. 시스템이 무너져내리는 가운데, 최종 책임자는 자신의 책임을 말하는 대신 '책임질 사람에 대한 색출 의지'를 과시하는 단죄자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했다. 침몰하는 시스템에서, 대통령은 그렇게 가장 먼저 '탈출'했다."
지금 나는, 500여 명의 승객의 생명을 책임져야 했던 세월호 선장의 태도와 5000만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의 자세가 놀랍도록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심각한 공포감을 느낀다. 이런 문제있는 선장들이 키를 잡는 것을 허용하는 이 사회 구조는 더욱 두렵다.
그러니, 다시 묻자. 우리가 이 사건의 책임 소재를 가리고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의카타르시스를 위함인가, 이런 일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인가? 우리에게는 그저 슬픔에 빠져 있을 권리도, 화를 위한 화만 반복하고 있을 여유도 없다. 그 모든 것은 사치다. 깊은 바다 속에서 삶을 빼앗긴 이들을 기리기 위해, 우리가 진짜 해야만 하는 일들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423174302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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