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茶禮牀)은 말 그대로 다과상"
옛 선비들의 유언은 "제사를 간소하게 하라"
추석 차례 안 지내고 1년에 한 번 제사 지내는 종가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종가의 차례상은 어떨까?
추석을 앞두고 조선 숙종 때 소론의 당수이자 성리학자 명재 윤증선생의 종가인 명재고택을 찾았습니다. 추석 차례상을 미리 보여달라고 부탁드렸는데 300년 넘은 종가의 차례상은 생각보다 소박했습니다. 포를 올리고 과일은 3가지 대추, 밤, 배를 올리고, 백설기와 물김치, 차가 전부였습니다. 명재 종가의 종손 윤완식 씨는 여기에 식혜 정도가 추가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상에 올리는 음식의 양도 많지 않았습니다. 대추와 밤도 높이 쌓지 않고 백설기는 한 덩이, 배는 딱 한 개를 올립니다.
"옛날 목제기는 작아요. 배는 한 개 이상 올릴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요즘 배는 커서 한 개도 올리기 힘들어 시장에서 가장 작은 배를 찾아다닙니다." 윤완식 씨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차례상(茶禮牀)은 말 그대로 다과상"
윤완식 씨는 예부터 차례상은 말 그대로 다과상이었다고 말합니다. 다과상이니 올리는 음식의 수도 많지 않고 당연히 양도 많지 않다는 겁니다.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도 3만 원을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명재 윤증선생은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검소하게 산 선비였습니다. 선생은 초가집에서 살면서 식사도 반찬이 세 가지를 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명제 선생은 "제사를 간소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기름을 쓰고 사치스러운 유밀과(약과)와 전을 올리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명재 종가에서는 제사상에도 전을 올리지 않습니다.
명제 선생의 유언은 "제사를 간소하게 하라"
명재 종가에는 제사상의 크기도 정해져 있습니다. 가로 98cm, 세로 66cm. 차례상과 제사상 모두 같은 크기의 상에 차립니다. 제사상에는 차례상에 생고기와 탕, 국, 나물 정도가 추가될 뿐입니다. 정해진 상의 크기가 작으니 더 많은 음식을 놓고 싶어도 자리가 없습니다.
윤완식 씨는 제사상이 화려해진 건 전통이 아니라 과시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습니다. "옆집은 3층을 지으면 우리는 5층을 지어야 되고 그렇게 경쟁적으로 허례 같은 게 자꾸 생기죠. 제사도 거기에 편승해서 과하게 차려지지 않나 싶어요."
명재 종가의 제사는 꼭 어떤 음식을 올려야 한다는 등의 원칙이 없습니다. 바나나나 파인애플 같은 조선 시대에는 없었던 과일 등도 올립니다. 남녀차별도 없습니다. 첫 잔은 종손이 올리고 두 번째 잔은 종부가 올린다는 예법에 따라 남녀가 함께 절을 합니다.
단 한 가지 원칙은 '정성'입니다. "음식을 많이 올리지 않지만, 상에 올릴 음식을 쌓을 때는 창호지를 입에 물고 정성을 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음식을 하느냐가 아니라 정성이 중요한 거지요. 조상들이 제사를 간소하게 하라고 한 것은 형식보다는 정성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물 한 잔을 떠놓고 하더라도 정성만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추석 차례 안 지내는 퇴계 이황 종가
퇴계 이황 선생의 종가는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습니다. 안동지역 종가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대신 10월 셋째 주 일요일에 '시제'를 지냅니다. 과거에는 중양절인 9월 9일에 시제를 지냈지만, 휴일이 아니면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 10월 셋째 주 일요일로 정해 모입니다.
'시제'때 올리는 상도 간소합니다. 문어와 고기 등으로 만든 적과 대구포, 과일 한 접시, 떡 한 접시가 전부입니다. 검소한 삶을 살았던 퇴계 선생의 뜻을 따르는 겁니다.
궁궐 다음으로 가장 컸던 99칸짜리 사대부의 반가 '임청각'.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던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기도 합니다. 고성 이씨 임청각파, 안동에서만 500년을 이어온 이 명문가에서도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습니다. 역시 10월쯤 조상들의 묘를 찾아 간단히 '시제'를 올립니다. 이때도 포와 과일, 떡 정도만 준비합니다. 종손 이창수 씨는 이번 추석에도 휴식을 즐길 계획입니다.
1년에 한 번 광복절에 제사 지내는 종가
임청각 종가는 90년대부터 제사도 8월 15일 광복절에 한 번만 지냅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정해진 날입니다. 원래 1년에 8번 기제사를 지내야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후손들의 어려움을 생각해 가족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날인 광복절에 한 번만 지내기로 한 겁니다. 무려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가문다운 결정입니다.
제사상도 소박합니다. 4대 조상의 기일제사기에 작은 상 4개에 과일과 나물, 생선, 포, 전, 밤, 대추 등을 조금씩 올립니다. 이창수 씨는 소박하고 간소한 제사상은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집안 전통이라고 설명합니다. 조선 시대에도 간소하게 지냈고 지금도 간소하게 지내는 것뿐이라고요.
독립운동을 위해 집안의 신주를 땅에 묻고 만주로 떠났던 석주 이상룡 선생. 만주에서도 종가는 정말 간소하게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만주에서는 형식대로 다 맞춰서 지내려고 하면 제사 준비하는 데 돈이 너무 들잖아요. 독립자금이 중요한데 그럴 수 없으니까 그때도 정말 간소하게 물고기 한 마리 잡아서 제사를 지내고 했다고 해요. 석주 선생이 살아계실 때도요." 이창수 씨는 이렇게 전합니다.
집안에 내려오는 '가제 정식'이라는 문서를 봐도 당시 기준으로 간소한 제사형식이 기록돼 있습니다. 1700년대 기록된 이 문서에는 형제가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라는 등의 파격적인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큰아들만 제사를 지내는 것도 절대불변의 전통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셈입니다.
진짜 전통은 '정성'
그렇다면 전통은 무엇일까? 종손 이창수 씨는 전통은 '가가 예문'으로 집마다 다른 것일 뿐이어서 정하기 나름이라고 설명합니다. 후손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마음으로 조상을 기리면 충분하다는 겁니다.
명재 종가의 종손 윤완식 씨 설명도 비슷했습니다. 정성만 있으면 물 한 잔으로도 상관없다며 제사상에 많은 음식을 올리기 위해 후손들이 힘들고 혹시 갈등을 겪게 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자손들이 화합하고 즐거워한다면 제사상을 어떻게 차려도 조상들은 이해해주신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수백 년 종가들의 간소한 차례는 조상을 섬기는 진정한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참고로 제가 만나본 종가들은 오히려 '명절증후군'이 없다고 합니다. 명절은 그저 모여서 즐겁게 노는 날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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