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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도 지킬 수 없도록 설계된 정치자금법

류. 2018. 7. 24. 19:29

한국 진보정치 역사에 큰 역할을 했던,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삼가 애도한다.

한국 진보정치는 권영길-노회찬-심상정 등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노회찬 의원은 원내진입 이전에 민주노동당 부대표와 사무총장 시절, 故 이재영 정책국장과 함께 당시 있었던 ‘전국구’ 방식의 선출에 대해 위헌 소송을 제기하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그래서 실제로 제도화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는 대부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참고로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현재 우리나라의 혼합식 비례대표제는 차이가 크다.)


자신이 쟁취한 비례대표제를 통해 노회찬은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순위 8번으로, 새벽 2시경에 김종필을 제치고 당선을 확정했다. 그렇게 노회찬은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노회찬의 죽음과 정치자금법

노회찬 의원의 죽음은 ‘지키기 어렵게 설계된’ 정치자금법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돈 없는 사람’, ‘인맥이 빵빵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를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혹은 ‘불법을 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서강대 서복경 교수에 따르면, 정치자금의 유입(입구) → 운영 → 사용(출구) 세 가지 모두를 동시에 규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금권선거에 대한 규제는 정치활동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정치자금의 모금, 지출 상한액을 지키도록 하고 정치자금 지출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는 규제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서복경)


미국은 유입-사용에 대해서는 제한이 없고, ‘운영의 투명성’을 감시한다. 한국은 유입에 관해서도 엄격하고, 사용에 관해서도 용도가 모두 특정돼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치자금법은 지킬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두 가지 경우 

그럼, 기존 정치인들은 어떻게 할까?

첫째, ‘돈’이 많은 경우이다. 정몽준, 안철수같은 경우이다. 이들은 돈이 많아서 현행 정치자금법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둘째, 학벌이 좋고, 인맥이 좋은 정치인은 ‘누설의 부담’ 없이 돈을 받을 수 있다.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온 정치인은, 그 사람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자기 친구들, 선후배 역시 ‘돈을 잘 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판사·변호사·의사·대기업 임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0년~20년의 오랜 기간 친구, 선후배로 지낸 경우에는 ‘누설의 부담이 없기에’ 돈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 노회찬 의원에게 돈을 준 것으로 알려진 사람도 경기고 동창인 도 모(某)(61세) 변호사였다.


지키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법 

아마도 한국 정도 되는 경제 규모와 민주주 수준을 가진 나라에서, OECD 국가를 통틀어 한국이 ‘국회의원 중에 감옥에 가는 비율’이 가장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 정치인들이 다른 나라보다 더 부정부패를 밥 먹듯이 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어렵게 설계된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때문으로 봐야 한다.

유권자와 만나서 ‘공약’을 발표하는 것도 ‘선거운동 개시일’ 이전에 하면 전부 선거법 위반이다. 그리고 유권자와의 대면접촉을 가능케 하는 가가호호(家家戶戶) 방문도 한국은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정치를 하려면, 일상적으로 ‘유권자’를 만나 자신의 정견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려면 밥값-차값-술값이 들어간다. 그리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돈이 들어간다.

정치를 하다보면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은 상수(常數)에 가깝다. 그런데, 그때 받는 돈은 모두 불법에 가깝다. 친구들에게 받는 돈도, 선후배들에게 받는 돈도 불법에 가깝다.

한국이었다면, 절대로 오바마-샌더스같은 정치인이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와 샌더스도 한국에서는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에 걸려 검찰의 밥’이 되어 온갖 모욕을 당하다가 감옥에 갔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치에도 ‘돈’은 필요하다

국회의원 300명 중에 2/3 이상은 서울대·연대·고대·서강대·성대 등 소위 명문대 출신이다. 한국은 유독 다른 나라에 비해 명문고-명문대 출신의 국회의원 비율이 높다.

그 이유 역시도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때문으로 봐야 한다. 한국은 진보이든, 보수이든, ‘학벌과 인맥이 좋은’ 사람만 정치할 수 있다. 그래야 ‘누설의 부담없이’ 지인들로부터 정치자금을 후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강남 우파’와 ‘강남 좌파’만 정치에 근접할 수 있다.

학교 선생님들이 이슬만 먹고 살지 않듯이, 정치인들도 이슬만 먹고 살지 않는다.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활비가 필요하고, 활동비가 필요하고, 상근자 급여와 사무실 유지비용이 필요하다. 월 단위로, 최소 500만 원~3,000만 원이 필요하다.

현역 정치인도, 떨어진 낙선한 정치인도, 혹은 청년-여성 예비 출마자들도 ‘정치자금’에 대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노회찬 의원이 지킬 수 없는 법이라면 정치인 대부분이 지키기 어려운 법이라고 생각한다. 지킬 수 없도록 설계된 정치자금법이 한국 진보정치의 큰 별이자 가장 깨끗한 정치인이었던 노회찬 의원을 죽음으로 몰고갔다.


노회찬 (1956년 8월 31일~2018년 7월 23일, 향년 61세)


출처

http://slownews.kr/70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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