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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미인도 신군부가 조작” CNB 단독보도 사실로 밝혀져 - 김재규를 파렴치범으로 몰기 위해 위작을 진품으로 둔갑.

류. 2016. 12. 19. 16:12

프랑스 감정팀 ‘위작’ 결론…진짜 출처는 어디?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는 1979년 12월 8일 “김재규의 집에서 고서화 1백여점이 발견됐다”고 발표했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고서화들 중 하나가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였다고 밝혔지만 천 화백은 죽는 날까지 ‘내 작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합수부 발표 내용을 보도한 당시 경향신문(왼쪽)과 미인도.


국립현대미술관이 고(故) 천경자 화백(1924~2015년)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미인도’를 프랑스 유명 감정팀이 분석한 결과 ‘가짜’라는 결론을 내렸다. CNB는 지난 6월 20일과 23일 단독보도를 통해 “미인도가 1979~1980년 신군부의 정권 찬탈 과정에서 거짓으로 탄생했을 가능성”을 당시 자료와 증언을 통해 언론 최초로 제기한 바 있다. 미인도가 위작으로 판명 나면서 CNB의 의혹 제기 또한 사실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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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의 그림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아
당시 재판기록·증언 어디에도 미인도 없어

프랑스 미술품 전문감정기관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연구소는 지난 1일 “미인도는 위작”이라고 판정한 보고서를 검찰과 유족에 제출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감정팀은 특수카메라로 논란의 미인도와 진품 9점을 비교했다. 눈과 눈동자, 코와 입 등 9개 항목을 1600여개 단층으로 세밀하게 쪼갠 뒤, 숫자로 바꿨다. 

미인도는 모든 항목에서 진품들과 값이 달랐다. 감정팀은 진품일 확률이 0.0002%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진품은 세밀하고 둥글고 부드러웠지만 미인도는 두껍고 각지고 거칠었다는 게 감정팀의 판단이다. 사실상 천 화백의 작품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현대미술관 측은 “종합적인 검증을 통한 결론이 아니라 부분적 내용을 침소봉대하고 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검찰은 이번 감정 결과를 비롯한 여러 분석 자료를 토대로 조만간 위작 여부를 최종적으로 가리고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앞서 CNB는 “미인도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집에서 나왔다”는 현대미술관 측의 주장을 반박한 바 있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1년 4월 천 화백이 직접 가짜 의혹을 제기하며 불거졌다. 그러자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현대미술관 측은 “미인도가 1979년 10‧26(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의 소장품이며,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세력)가 수사 과정에서 압수해 재무부로 넘겼고 이후 문화공보부를 거쳐 현대미술관에 보관돼 왔다”며 “감정 결과 천 화백의 작품이 분명하다”고 발표했다. 

이후 25년간 양측의 진실공방이 계속돼 왔고, 미술계 또한 양분돼 미인도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이런 가운데 천 화백은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현대미술관이 ‘김재규 소유설’을 주장한 데는 신군부가 1979년 12월 8일 발표한 ‘김재규 비위 사실’이 배경이 됐다. 

신군부는 당시 언론에 “김재규의 집에서 호화자개장, 고려청자 등 고가 자기류, 고서화 1백여점이 발견됐는데 (너무 많아서) 진열이 곤란하자 그대로 창고에 방치해둔 상태였다”고 알렸다. 

신군부와 현대미술관의 주장을 종합하면, 발견된 고서화 1백여점 중에 미인도가 있었고 이를 압수해 미술관 측에 넘겼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CNB 취재결과, 당시 재판기록 어디에도 고서화 등에 관한 기록이 없었다. CNB가 당시의 판결문, 공소장, 최후진술, 항소이유서, 변론요지서, 압수물품 목록 등 각종 재판기록을 입수해 분석했으나, 부정축재 및 비리와 관련된 혐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재규에게 적용된 범죄혐의는 내란목적살인죄 및 내란미수죄였다.
 
신군부가 비위 사실을 발표한 시기는 쿠데타가 있기 나흘 전이었다. 그해 12월 12일 신군부는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김재규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제거(12.12반란)하고 군부를 장악했다. 

따라서 쿠데타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김재규의 비위사실이 발표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재판기록에 김재규의 비위사실이 없었다는 점은 신군부의 발표 자체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1979년 12월 8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뒤 공개재판을 받고 있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신군부 세력은 이날 재판이 열리기 직전에 김재규의 비리를 발표했는데 그 중의 일부가 ‘김재규 집에서 고서화 1백여점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미인도’는 이렇게 탄생한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위조 했나

당시 이돈명·강신옥 등 1세대 인권변호사들과 함께 김재규 구명운동에 나섰던 함세웅 신부(민주주의국민행동 상임대표)는 지난 6월 CNB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신군부는 김재규의 죄목을 최대한 부풀리고 있었다. 김재규를 희대의 파렴치범으로 만들어야 자신들의 쿠데타가 정당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가물품들이 김재규 집에서 나왔다면 왜 검찰의 공소장에 그런 내용이 없었겠나”고 강조한 바 있다.  

함 신부 뿐 아니라 <의사 김재규>를 발간한 백승대 씨 등 김재규 사건의 자료를 수집해온 여러 인사들 모두 “김재규 집에 고서화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 중에는 당시 김재규의 집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다는 이도 있었다. 신군부가 발견했다는 수백여점의 고가물품 또한 지금까지 행방이 밝혀진 바 없다.  

CNB는 이런 취재 과정을 거쳐 김재규의 집에서 발견됐다는 미인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아직 이번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규명된 건 아니다. 김재규의 집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가짜 미인도가 탄생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미인도를 위조했는지, 현대미술관은 왜 지금까지도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배경도 밝혀내야 한다. 

미인도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작품의 진위 여부를 넘어, 한 시대와 함께 했던 두 사람(천경자·김재규)의 명예를 규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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